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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퀀텀 점프 이끌 양자컴퓨터
이순칠 카이스트 물리학과 명예교수
김선녀 사진 김기남

국내 양자컴퓨터 연구 1세대로 꼽히는 이순칠 카이스트KAIST 명예교수는 2000년 핵자기공명NMR 방식의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며 국내 양자컴퓨터 연구를 선도해왔다.
인류 문명의 두 번째 퀀텀 점프를 이끌 미래 과학기술로 주목받는 양자컴퓨터 기술의 현주소와 가능성을 이 교수에게 들었다.

양자컴퓨터의 개념은 여전히 낯설게 느껴집니다. 양자컴퓨터란 무엇이며, 왜 문명의 퀀텀 점프를 가져올 기술로 불리는 걸까요?
미시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물리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미시 세계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이 양자물리이고, 양자물리 법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이 양자컴퓨터죠. 기존 컴퓨터와는 다른 차원의 컴퓨터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병렬로 처리해 기존 슈퍼컴퓨터가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미래를 크게 바꿀 기술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국내 양자컴퓨터 연구 1세대로 알려져 있는데, 처음 이 분야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대학 진학 당시 전자공학과와 물리학과 사이에서 물리를 택했습니다. 둘 다 흥미로운 분야여서 고민을 했죠. 그런데 양자컴퓨터는 물리와 전자공학이 만나는 분야잖아요. 그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어떠한 고민도 없이 양자컴퓨터 연구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물리학계에서 큰 문제는 대체로 다 풀린 것 같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양자컴퓨터가 새로운 도전 영역으로 부각됐죠.
현재 집중하고 있는 연구 주제나 프로젝트가 있나요?
연구 초창기에는 핵자기공명 양자컴퓨터 하드웨어를 직접 구현하는 연구를 했습니다. 은퇴 이후에는 양자컴퓨터로 미분방정식을 푸는 알고리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유체역학이나 열역학 분야의 미분방정식을 푸는 데 양자컴퓨터가 빛을 발할 수 있고 산업적으로도 영향이 크겠다 싶어,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동료와 함께 알고리즘 개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면 우리의 삶과 산업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양자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 제약·화학·금융·자동차 산업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생명공학 분야에서 역노화 관련 약이 연구되고 있는데요. 이 과정에서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메트포르민 같은 약의 분자 기전을 밝히고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또한 전쟁 시에 드론이나 로봇 병사의 조작, 부대 배치 등에서 핵심 기술로 활용될 수 있을 만큼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관심 있게 지켜보시는 양자 연구 동향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정보전달을 위한 양자 통신·센서 분야에서 가장 화두라 할 수 있는 리피터 기술을 관심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리피터는 장거리 양자 통신에서 손실과 왜곡 없이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이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양자컴퓨터 구현에 필수라 할 수 있는 확장성과 오류 정정 기술을 확보하는 데 핵심이 되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양자컴퓨터 분야를 연구하면서 거둔 주요 성과나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2000년에 처음 핵자기공명 양자컴퓨터를 구현했다는 점이 제 연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핵자기공명 방식이 가장 유망한 양자컴퓨터로 주목받았습니다. 이후 이온 트랩, 초전도, 중성 원자 방식 등이 차례로 떠오르면서 제가 연구하던 분야는 다소 침체된 상태라 할 수 있죠. 과거에 전망이 불투명했던 여러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치고 올라왔듯이, 앞으로 또 어떤 방식이 주목받을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양자컴퓨터 기술은 어느 수준까지 와 있으며, 실용화 시점은 언제라고 보시나요?
원격으로 양자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는 이미 상용화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은 전문가들을 위한 서비스일 뿐이죠. 우리가 일상에서 체감할 만한 실용적인 성과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신약 개발이나 최적화 등의 분야에서 슈퍼컴퓨터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사례가 4~5년 안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내 양자컴퓨터 연구 1세대인 이순칠 교수는 2000년 핵자기공명NMR 방식을 활용한 양자컴퓨터를 국내 최초로 구현하며 한국 양자컴퓨터 연구의 기반을 다졌다.
우리나라가 양자컴퓨터 기술 선도국으로 나아가려면 어떤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까요?
우리나라의 하드웨어 기술은 선진국에 비해 10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봅니다. 이를 따라잡기 위해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가장 아쉬운 건 연구 인력 양성 문제입니다. 연구비는 지속적으로 늘어도 전문가는 빠르게 늘지 않기 때문에 발전이 더딘 측면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선도할 수 있는 분야를 생각해본다면, 아직 크게 발달하지 않은 산업화와 소프트웨어 영역에 좀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양자컴퓨터의 실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해결해야 할 기술적 난제는 무엇인가요?
양자컴퓨터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는데, 공통된 화두는 확장성과 오류 정정입니다. 양자컴퓨터를 실용화하려면 큐빗Qubit 수를 크게 늘리는 동시에, 중첩과 얽힘 등 양자역학적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류를 정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해 양자컴퓨터의 정보 단위인 큐빗을 원자·전자 등의 수준에서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는 나노기술 개발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으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분야든 박사과정을 하다 보면 어디로 가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기가 한 번쯤 오게 됩니다. 저도 핵자기공명을 활용해 양자컴퓨터를 만들던 당시 관련 논문을 처음 접했을 때 무슨 말인지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고, 6개월간 막막한 상태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기를 버티게 해준 건 ‘이 어려운 수수께끼를 꼭 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즐겁게 임했던 기억이 더 많이 남아 있습니다.
양자컴퓨터 연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자질과 역량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물리나 전자공학, 양자물리에 흥미를 느껴야겠죠. 골치 아픈 문제를 싫어하고 편안한 길을 선호한다면 이 분야는 맞지 않을 수 있고, 수수께끼 푸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 도움이 됩니다.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본인이 열정을 느낄 수 있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앞으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역에서 물러난 상태이니 양자컴퓨터가 정말 실용화되어 널리 쓰이는 모습을 제 눈으로 보는 것이 꿈이죠. 개인적으로는 지금 공부하고 있는,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미분방정식 풀이가 실제 하드웨어에 적용돼 기후변화나 에너지 문제 같은 인류의 난제를 푸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이순칠 카이스트 물리학과 명예교수
이순칠 교수는 누구
이순칠 카이스트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양자 정보과학 연구를 개척한 1세대 학자로 꼽힌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핵자기공명을 이용한 양자컴퓨터 연구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국내 연구 기반을 다졌다. 특히 국내 최초로 병렬처리 양자컴퓨터를 구현해 주목받았으며, 한국물리학회 부회장과 응집물리분과회장, 한국연구재단 양자기술단장 등을 역임했다. 양자 과학기술의 저변 확대와 인력 양성에 꾸준히 힘써왔으며, 카이스트 명예교수로서 강연과 저술, 학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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