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열기
Focus Story>Story③
CES 전시장에서 느낀
우리 제조업의 미래
이덕주 <매일경제신문> 기자

4년 연속 CES 현장을 지켜본 기자의 눈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우리 제조업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중국의 거센 물량 공세 속에서도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가 보여준 실용적 혁신은 한국 제조업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로봇과 모빌리티,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글로벌 제조 생태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치열한 분투와 미래 전략을 소개한다.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 5위 기업인 엔진AIENGINEAI 부스에서 로봇들이 정교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중국이 하드웨어 제조 생태계를 바탕으로 로봇 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필자가 CES를 찾은 것은 올해를 포함해 총 네 번이다. 두 번째(2024)와 세 번째(2025)는 실리콘밸리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라스베이거스를 찾았고, 첫 번째(2023)와 올해(2026)는 한국에서 출발했다.

4년 연속 행사에 참여하면서 좋은 점은 매년 변해가는 테크 트렌드를 면밀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CES에도 이른바 ‘아마라의 법칙’이 적용된다. 기술의 효과는 단기적으로는 과대평가되고, 장기적으로는 과소평가된다는 법칙이다. 매년 CES에 나오는 회사들은 같은 얘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보면 4년 만에 기술은 우리의 삶을 놀랍게 변화시켰다.

4년간 CES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2024년부터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던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번 CES 2026에서 주요 전시장인 노스홀을 가득 채웠다. 사실 과거에 휴머노이드 로봇은 과학적 연구의 영역에 있었다. 소비자를 위한 제품이 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2021년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의 등장과 이후 AI의 빠른 발전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붐이 일기 시작했고, 5년 만에 휴머노이드 로봇은 CES 전시장에 도달하게 됐다. 물론 CES 전시장에서 우리가 목격한 로봇의 많은 움직임은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원격 조종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휴머노이드 로봇들의 이족보행이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완전히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실험실 밖으로 나온 휴머노이드, 전시장을 점령한 중국의 물량 공세

노스홀을 가득 채운 휴머노이드 로봇 다수는 중국에서 온 것이었다. 지금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을 이끄는 국가가 어딘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M.AX 휴머노이드 얼라이언스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수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우위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출하량 기준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1위인 애지봇을 포함해 2위 유니트리, 5위 엔진AI, 6위 푸리에 인텔리전스까지 중국 기업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처럼 CES에 참여하는 혁신적인 제조기업의 절대다수가 중국 기업인 것은 한두 해 일이 아니었다. 숫자상으로 보면 CES에 참여하는 중국 기업은 전자제품 위탁 제조를 하는 기업이 제일 많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전자제품 생태계가 얼마나 촘촘한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특히 CES 2026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비롯해 모빌리티, 스마트 안경, 로봇청소기, AI 웨어러블 등 분야에서 앞선 기술과 브랜드를 내세운 중국 기업이 지난해보다 더 많아 보였다. 로키드와 이븐 리얼리티스 같은 스마트 안경 기업들이 큰 부스를 냈고, 눈에 띄는 AI 웨어러블 디바이스들도 중국 기업에서 주로 나왔다.

어째서일까? 지금 전 세계에서 전자 제조 생태계가 가장 발전한 국가가 중국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비자용 전자제품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더라도 결국엔 중국에 가서 생산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제품의 아이디어와 노하우가 중국 생태계로 흘러나가게 된다. 당장 한국 기업이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스마트 안경을 제조한다고 할 때 중국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이런 고민은 CES에 4년 연속 참여하면서 꾸준히 든 생각이다. 갈수록 국내에서 제조를 위한 환경은 어려워지는데 국내 제조업 부활이 가능할까.

중국의 AR 글라스 기업인 로키드는 이번 전시회에서 대규모 부스를 마련했다.
AI 웨어러블 시장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중국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아틀라스’가 제시한 한국형 실용 혁신의 길
CES 2026의 최고 스타 ‘아틀라스’. 로봇이 인간의 대체재가 아닌, 제조 현장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증강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실증했다.
이번 CES 최고의 스타였던 현대차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는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기술이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한국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미국 기업이다. 로봇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인적 자원과 문화는 미국에 뿌리를 뒀다. 하지만 한국이 인수한 이후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달라졌다.

가장 큰 영향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방향으로 회사의 개발 방향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 구글이나 소프트뱅크가 대주주였을 때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로봇이 인간 같은 묘기를 보여주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현재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훨씬 실용적으로 접근한다. 중국 로봇처럼 쿵후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차라는 최적의 모회사를 만난 셈이다.

현대차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만남이 갖는 더 큰 의미는 로봇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기술을 한국 기업들이 제시했다는 점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대차에서 양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들어가는 액추에이터,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데 한국 기업이 기회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 CES에서 로버트 플레이터 보스턴 다이내믹스 CEO는 삼성과 LG 부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CES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처럼 로봇 같은 첨단 제조업에서 한국은 중국과 직접 경쟁할 수 있는 제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한국 내 제조일 수도 있고 해외 제조일 수도 있지만,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에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제조업 협력의 청사진을 아틀라스가 제시한 셈이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함께 대표적인 피지컬 AI로 꼽히는 모빌리티도 그렇다. 많은 한국 전자기업이 미래 차 공급망에 들어가 있다. 디스플레이, 카메라, 배터리, 반도체 등 다양하다. 이 시장에서만큼은 기술과 원가, 신뢰성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과의 맞대결을 피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AI 데이터센터라고 불리는 AI 인프라 분야도 마찬가지다. 최근 CES는 소비자 가전 행사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데이터센터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는 현재 전자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분야가 이쪽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빠르게 AI 데이터센터의 국내 제조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고, 한국에도 여기에 참여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로봇, 모빌리티, 데이터센터라는 3가지 핵심 분야에서만큼은 우리가 세계 최고의 제조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노스홀에 전시된 노이라 로보틱스Neura Robotics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복잡한 빨래 분류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포스트 차이나 생태계 구축, K-제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
인도 딥테크 기업의 약진. 웨스트홀에 대규모 부스를 마련한
브랜드웍스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주요 IT 기기의 생산기지로 입증된 인도는 IT 기술을 결합한 제조 솔루션을 앞세워
전 세계 테크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을 벗어난 제조 생태계 구축도 중요한 대안이다. 이번 CES 2026에는 많지는 않지만 인도 기업들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29개 기업이 참가했고, 이 가운데 SRK테크트로닉스, 브랜드웍스 같은 전자제품 위탁생산 기업EMS들이 있었다. 인도는 국가 차원에서 전자산업을 키우고 있는데 이런 흐름이 CES까지 도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이미 아이폰 등 스마트폰이 제조되고 있고, 가전제품 공장도 많다. 우수한 인재와 큰 시장 등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곳임은 이미 입증되었다.

인도뿐 아니라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베트남이나 동남아 지역도 중국의 대안으로 가능성 있는 곳이다. 이런 가능성을 보고 중국 EMS 업체들이 먼저 진출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중국 이외 지역의 제조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키우고, 한국과 연계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제조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소형 가전 같은 저가 제품 시장은 이미 국내에서 제조 자체가 거의 어려워진 상태다. 이런 시장에서는 아이디어와 속도에 기반한 제품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 즉 중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으로 중국 기업의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CES 취재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보면 행사 준비를 위해 1월 1일 혹은 1월 2일부터 출발하는 한국인 스태프들을 많이 만난다. 새해 첫날부터 먼 타국으로 와서 전시를 준비하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20년 넘게 미국 시장과 전 세계 시장을 뚫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제는 CES 기간에 미국 항공사 두 곳이 인천-라스베이거스 전세기를 운영할 정도로 한국에서도 CES는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사실 이렇게 열심히 일해온 우리 선배들 덕에 한국은 전자산업의 중심에 서 있다. 중국 기업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LG전자 같은 기업이 잘 버텨주면서 승리의 길을 찾고 있다. 이번 CES에서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한국 기업인과 엔지니어들을 응원한다.

이덕주 <매일경제신문> 기자
실리콘밸리 특파원을 거쳐 현재 산업부에서 글로벌 테크 산업과 제조 혁신 현장을 심도 있게 취재하고 있다.
4년 연속 CES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와 우리 기업의 생존 전략을 분석해 기록해왔다.
 이번 호 PDF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