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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슬기로운 기술 생활
새로운 블루오션 ‘햅틱 기술’,
디지털 촉감 시대를 열다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손가락 하나로 화면을 ‘톡톡’ 두드리면 원하는 기능이 ‘척척’ 실행되는 터치스크린 형태의 휴대전화. 휴대전화를 터치했을 때 우리는 진동을 느낍니다.
또 휴대전화는 하루에도 수십 번 울리며 알림 소식을 전합니다. 이러한 진동과 울림 뒤에 숨겨진 기술, 바로 햅틱입니다.
과연 햅틱 기술이 무엇이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볼까요?

햅틱 기술이란 무엇인가
햅틱Haptic은 2006년 2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가 인류 미래 삶의 모습을 변화시킬 10가지 기술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포브스>는 햅틱 기술이 일상생활 속 대부분의 전자기기에 적용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햅틱이란 말은 그리스어의 ‘만지는’을 뜻하는 형용사 ‘Haptesthai’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로 ‘촉각의’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햅틱은 촉각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입니다. 마우스, 키보드, 터치스크린 같은 각종 디지털 기기를 만지거나 다룰 때 실제로 특정한 물체를 만지는 듯한 촉감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문자메시지가 왔을 때의 짧은 진동이라든지, 가상현실VR 게임을 하면서 총을 쏘았을 때 느끼는 떨림 등이 바로 햅틱 기술에 해당합니다.

햅틱은 감각의 종류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촉감 재현 기술’로 나뉩니다. 근육과 관절에 물리적 힘을 전달하는 ‘역감 재현Force Feedback(운동감각 재현)’과, 피부에 질감·진동·압력·온도 등을 전달하는 ‘진동 촉감 재현Vibrotactile Feedback’ 기술이 그것입니다.

역감 재현은 화면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움직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의 총 게임에서 총을 쏘았을 때 반동이 느껴지는 것과 같습니다. 진동 촉감 재현은 손끝에 실제 대상을 만지는 것 같은 촉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를테면 의사들이 가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시술을 연습할 때 실제처럼 느껴지는 촉감입니다. 4DX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의자가 움직이고,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오면 떨리고, 피부에 바람이나 물이 뿌려지고, 작은 핀으로 등을 두드리는 것은 역감과 진동 촉감을 모두 재현한 방식입니다.

햅틱은 촉각을 통해 사용자와 기기 간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가상현실·증강현실AR·확장현실XR·메타버스 등이 햅틱 기술과 결합될 경우 콘텐츠 사용자의 몰입도를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디지털 촉감을 창조한 햅틱의 진화
그렇다면 햅틱 기술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그 처음은 1960년대 로봇의 원격조종을 위한 공학에서 시작됐습니다. 우주공간 같은 위험한 곳에 로봇을 보내 사람이 원격으로 조종하자는 생각을 한 겁니다. 먼 거리의 로봇을 조종하여 물체를 만지게 할 때 그 촉감을 사람도 느껴야 제대로 된 조종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햅틱 기술을 개발한 동기입니다.

최초의 햅틱 기술이 적용된 사례는 전화입니다. 1973년 미국 발명가 토머스 섀넌Thomas D. Shannon이 최초로 ‘촉각 전화’ 관련 특허를 취득했고, 1975년 벨 전화연구소의 마이클 놀Michael Noll이 촉각 통신 시스템을 발명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윌리엄스일렉트로닉스Williams Electronics에서 진동으로 반응하는 햅틱 기능의 핀볼 게임기 ‘어스셰이커Earthshaker’를 선보였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1990년대엔 콘솔 게임 제조사들이 햅틱 기술을 사용한 게임기들을 대량 생산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햅틱 기술은 비디오 게임, 로보틱스, 소비자 가전 등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휴대전화 터치스크린에 적용되며 대중에게도 친숙한 기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이야 흔한 기술이지만, 햅틱 기술이 적용된 휴대전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대중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차갑게만 느껴지던 디지털 기기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햅틱 기술의 핵심은 진동입니다. 스마트폰에서 주사위 놀이나 윷놀이를 할 때나, 공이 튀는 느낌을 구현해 실감 나는 탁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진동 패턴을 만들어놓은 덕분입니다. 진동은 진폭과 주파수, 전달 시간 등을 바꿔가며 다양한 촉감 유형을 만들어냅니다.

햅틱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과거의 밋밋한 터치스크린은 진동이 없어 기기를 만지고 다루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가락이 크거나 기기 사용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사용할 땐 실수나 오작동이 잦았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햅틱 기술이 적용되면서 디지털 기기 사용자에게 현실감과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오작동 비율이 줄고 동작 효율도 높아졌습니다. 현재의 햅틱 기술은 사용자와 기기 간의 소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햅틱 기능 핀볼 게임기 ‘어스셰이커’.
햅틱 구현의 핵심은 센서와 액추에이터
햅틱 기술은 다양한 ‘촉각 수집 센서Sensor’와 촉각 재현 ‘액추에이터Actuator(구동장치)’를 사용하여 구현합니다. 센서는 사용자의 움직임이나 터치 감지를 통해 정보를 수집합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은 사용자가 화면을 누르는 압력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액추에이터는 센서가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진동·압력·움직임 등의 기계적 자극을 생성하여 사용자가 촉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이를 다시 종합하면 특정 물체가 센서에 닿으면 물체를 만질 때 발생하는 압력과 진동을 전기신호로 변환하고, 이 전기신호를 진동 액추에이터로 전송하는 것이 햅틱의 원리입니다. 이후 액추에이터는 전기적 에너지로 원하는 동작을 작동시키므로 촉감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을 누르면 그 밑에 달린 진동 모터가 작동하고, 이때 발생한 진동 자극의 촉감이 누른 손가락 피부를 통해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통해 사용자는 화면에서의 클릭이나 드래그 같은 행동을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햅틱 기술에서 주로 손으로 느끼는 감각을 다루는 이유는, 보통 외부 세계를 촉각적으로 탐색할 때 손을 먼저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촉각을 멀리서 느끼게 하는 텔레햅틱
거듭되는 햅틱 기술의 진화는 아예 접촉하지 않고도 마치 접촉한 듯 가상 감각을 느끼게 하는 원격의 햅틱을 발전시켰습니다. 바로 ‘텔레햅틱’입니다. 텔레햅틱Telehaptics은 촉각을 원격으로 전송하고 재현하는 기술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뜻하는 텔레Tele와 햅틱Haptic을 합친 말입니다. 직접 만졌을 때 느껴지는 촉감이 아니라 떨어져 있어도 느끼는 촉감에 초점을 맞춘 기술입니다. 어떤 특정 물체를 만졌을 때의 촉감을 멀리 떨어진 다른 사람의 손가락으로 전송하는 것인데, 원격 작업의 특성상 양방향으로 촉각 정보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 텔레햅틱을 구현한 주인공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입니다. ETRI 연구진은 ​피부 부착형 텔레햅틱 기술을 이용해 15m 떨어진 거리에서도 금속이나 플라스틱, 고무 등의 질감과 촉감을 손가락으로 느끼는 기술을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스티커처럼 손가락 끝 피부에 텔레햅틱 장치를 부착한 후 실험실에서 블루투스 통신을 이용해 촉감을 전달한 결과 15m 거리에서 얻은 촉감 신호와 재현한 촉감 신호가 97% 일치했다고 합니다. 데이터 신호 전달 과정에서도 지연이 거의 없어 실시간으로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또 ETRI라는 글자를 모스 부호로 전달해 원격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ETRI의 텔레햅틱 기술을 활용하면 원격에서 면과 폴리에스테르, 스판덱스 같은 서로 다른 직물의 재질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또 볼록하게 튀어나온 글자 표면을 만지거나 플라스틱 막대가 손끝을 굴러갈 때 나타나는 느낌도 원격으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텔레햅틱 기술은 가상현실을 이용한 스포츠과학과 특히 ‘궁합’이 잘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단거리 달리기 등 스포츠 동작을 가상현실에서 재현할 경우 선수는 땅바닥의 감각까지 기기를 통해 전달받을 수 있어 더욱 실감 나는 스포츠 동작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 기술이 응용되는 미래에는 박물관에서 직원이 특정 유물을 손으로 만지면 주변에 모인 관람객들이 동시에 자신의 손가락 끝에서 그 생생한 촉감을 느끼는 경험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ETRI의 텔레햅틱 기술
ETRI 텔레햅틱 기술에 활용되는 압전 센서.
ETRI 텔레햅틱 기술을 통해
촉각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
ETRI 텔레햅틱 기술에 활용되는 압전 액추에이터.
ETRI 텔레햅틱 기술에 활용되는 압전
액추에이터(좌)와 압전 센서(우).
ETRI 텔레햅틱 기술에 활용되는 압전 센서.
ETRI 텔레햅틱 기술에 활용되는 압전 액추에이터.
ETRI 텔레햅틱 기술을 통해
촉각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
ETRI 텔레햅틱 기술을 통해
촉각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
다양한 분야에 무궁무진 활용
물론 햅틱 기술은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만큼 실제 촉감과의 차이를 점점 줄여갈 것입니다. 이미 메타와 애플, 삼성전자를 비롯한 세계적 빅테크 기업들의 햅틱 기술 및 관련 장치 개발 경쟁이 치열합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햅틱이 적용될 가장 큰 시장인 세계의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2030년 9366억 달러(약 1300조 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현재 햅틱 기술은 게임기와 터치스크린뿐 아니라 자동차와 로봇,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되어 디지털 기기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최근 자동차에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ead-Up Display가 많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운전자는 내비게이션 기기, 오디오, 에어컨 등을 조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운전 중 시선을 분산시켜 안전 운행에 지장을 받습니다. 햅틱 기술은 차량의 이러한 여러 기능을 안전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스티어링 휠에 장착된 햅틱 피드백 시스템은 에어컨, 오디오, 모바일 기기, 내비게이션, 창문 같은 조작 대상을 촉각 느낌만으로 버튼 위치를 파악해 누를 수 있습니다. 휠 위에서 엄지손가락만으로 딱딱하고 무른 정도를 달리하는 촉각 버튼을 감지해 조정하기 때문에 운전자가 주행 중 주의력을 분산시키지 않고 안전 운전이 가능합니다.

의료 분야에서의 햅틱 기술은 수술 시뮬레이터 같은 훈련 기기를 이용해 의사들이 실제 수술을 하기 전에 다양한 상황을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통해 의사의 손 떨림 같은 문제가 보완돼 실제 수술을 할 때 더 정확하고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시신이나 동물을 이용해 수술을 연습해야 하는 필요성도 줄어듭니다.

햅틱 기술은 온라인 쇼핑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옷을 살 때 사진을 아무리 봐도 이게 어떤 재질인지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이럴 때 판매자가 옷을 구매하려는 사람에게 촉감 신호를 보내줄 수 있다면, 집에 있는 촉감 재현 장치로 재질을 직접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햅틱 기술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생활 곳곳에 적용될 것입니다. 그러면 더욱 생생한 감각으로 기계와 사람이 소통하는 실감 나는 세상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계속되는 햅틱 기술의 발전으로 촉감을 넘어 오감을 느끼는 햅틱의 디지털 시대가 열리길 기대해봅니다.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청소년 과학 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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