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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슬기로운 기술 생활
자연은 최고의 스승
진화하는 생체모방 기술의 세계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자연은 수십억 년의 역사 속에서 번식과 적응을 통해 자신들의 환경에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진화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이자 과학자, 공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찍이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이런 자연 생태계를 구성하는 동식물의 구조와 기능을 모방한 ‘생체모방 기술’을 통해 인류 문화와 삶의 질을 향상해왔습니다. 이제 자연으로부터 유래한 다양한 기술의 생체모방을 살펴볼까요?

대머리수리와 비행기 개발
라이트 형제는 대머리수리의 비행 모습을 통해 추진력, 상승력 등 중요한 비행 원리를 밝혀냈다.
생체모방Biomimetics은 ‘생체Bio’와 ‘모방Mimetics’의 합성어로, 자연에 존재하는 생물체의 다양한 기능을 모방해 물건이나 물질로 이용하는 기술입니다. 생체모방이라는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 인류 탄생과 함께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원시시대의 칼과 화살촉 같은 사냥 도구가 육식 동물의 날카로운 발톱을 모방해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03년 인류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도 생물체를 모방했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대머리수리가 나는 모습에서 비행기 개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두 형제는 대머리수리가 양 날개를 활짝 펼치며 부지런히 움직여 높이 오르고, 한쪽 날개를 밑으로 내려 회전 방향을 틀고, 천천히 날갯짓을 하면서 날개를 오므려 나뭇가지에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을 통해 상승력(비행기를 들어 올리는 힘), 추진력(비행기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조종력(방향을 조종하는 힘) 등 비행 원리를 밝혀낸 것입니다.

두 형제는 특히 대머리수리가 내려앉을 때 날개 끝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보조날개 깃털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비행기가 상승하거나 하강할 수 있는 것은 주날개 밑의 보조날개 덕분입니다. 이것은 공기의 저항과 기류에 따라 각도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라이트 형제의 이러한 동력 비행기 발명으로 비행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긴 역사를 지녔음에도 생체모방을 ‘공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달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나노기술과 극소량의 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생명공학 등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해졌습니다.
생물체의 접착력을 모방한 기술들
자연을 모방해 만든 상품 중 가장 실용적인 것은 ‘벨크로’ 테이프입니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고 있는, 일명 ‘찍찍이’라 불리는 접착제입니다. 조용한 산길이나 들길을 거닐다 보면 엉겅퀴의 씨가 바짓단에 붙어 따라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엉겅퀴는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사람 옷이나 동물 털에 들러붙어 먼 곳까지 이동할 수 있는 특수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벨크로는 엉겅퀴의 갈고리를 흉내 낸 발명품입니다.

1941년 스위스의 전기기술자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개와 함께 사냥을 나갔습니다. 사냥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그는 개의 털에 엉겅퀴 씨가 달라붙어 있는 걸 보고 털어냈지만, 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상해서 확대경으로 확대해보니 씨가 갈고리 모양으로 생긴 겁니다. 이걸 보고 영감을 얻은 그는 작은 돌기들을 이용한 잠금장치 벨크로 테이프를 개발했다고 합니다. 원리가 단순하고 제작비용이 저렴해 옷소매나 운동화, 심지어 무중력 상태 우주선 안의 도구를 고정하는 데까지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엉겅퀴 씨앗의 갈고리 구조에서 ‘찍찍이’ 벨크로가 탄생했다.

홍합도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홍합이 바위에 단단하게 붙어 있을 수 있는 이유는 10개의 아미노산이 반복돼 있는 단백질 때문입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이해신 교수는 홍합을 바위에 달라붙게 하는 접착 단백질의 힘을 단일 분자 수준에서 처음으로 규명한 연구 결과를 2006년 미국 ‘국립과학회보’에 게재했습니다. 2007년에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도 실렸습니다. 당시 그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생의학공학과 박사과정 중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현재 홍합의 아미노산 물질 도파를 응용해 수술 후 상처 부위에 붙이는 접착제가 개발되었습니다. 홍합 접착제는 물에 젖을수록 더욱 강력한 접착 능력을 갖추어 물에 젖어도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환자를 수술한 후 상처를 실로 꿰맬 필요 없이 접착제를 바르기만 하면 됩니다.
연잎 효과를 이용한 자동 세척제
생체모방 기술의 대부분은 동식물의 고유한 표면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표면의 질감이나 색상·속성 등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기술이 ‘연잎 효과’입니다. 연잎 효과는 마치 코팅된 것처럼 연잎이 물방울에 젖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연잎 효과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독일 본대학교 빌헬름 바르틀롯Wilhelm Barthlott 교수입니다. 그는 처음에 식물 그룹의 친족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전자현미경으로 수많은 식물 잎의 표면구조를 관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연잎 표면에 무수히 난 3~10㎛ 크기의 울퉁불퉁한 돌기가 연잎에 떨어진 물방울의 응집력을 높여 공처럼 동글동글 말려 구르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게다가 연잎 표면에서 굴러떨어지는 물방울은 표면의 먼지까지 쓸어내 연잎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줬습니다.

바르틀롯은 연잎의 이런 ‘자가 세정’ 원리를 페인트에 활용했습니다. 이 페인트를 바른 곳은 연잎처럼 표면에 자그마한 돌기들이 생겨 방수는 물론 때가 끼는 것을 방지해줍니다. 물로만 세척해도 표면의 노폐물이 같이 쓸려 내려가기 때문이죠. 물과 오염물질을 털어낼 수 있는 옷, 빗물에 젖지 않는 우산 등도 이 원리를 활용한 것입니다.
연잎의 ‘자가 세정’ 효과가 생활 방수 기술로 이어졌다.
로봇 기술 수준 한 단계 높인 해파리와 가오리
생체모방 기술은 로봇을 만드는 데도 핵심적 역할을 합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와 템플대 연구진은 해양생물인 해파리에서 영감을 받아, 해파리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몸을 가진 ‘소프트 로봇soft Robot’을 개발했습니다. 해파리는 딱딱한 골격이 없으면서 공기 통로가 있는 덕분에 물속에서 최소의 힘으로 놀라운 추진력을 발휘합니다.

연구진은 2020년 수중에서 해파리와 같은 강력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 부드러운 소재로 외부를 둘러싸고, ‘공명共鳴’ 현상을 적용한 해파리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공명은 특정 주파수에 힘이 가해질 때 큰 진동이 일어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아이들을 그네 태울 때 그네가 어떤 특정 위치에 오면 부모가 아주 작은 힘으로도 그네에 가속을 가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이런 원리가 작동되는 소프트 로봇을 활용하면 상처 입기 쉬운 약한 바다 생물을 안전하게 포획할 수 있고, 산호초 군락처럼 민감한 환경에서도 다른 생물에게 피해 주지 않고 해양 생태계를 감시할 수 있습니다.

또한 2024년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지에 인Jie Yin 교수팀은 쥐가오리에서 영감을 받은 차세대 소프트 로봇을 개발해 전례 없는 속도와 수중 기능을 달성했습니다. 쥐가오리의 유영 능력은 큰 가슴지느러미에 있습니다. 가슴지느러미를 물결처럼 움직여 추진력을 얻고, 상하・회전 등 방향을 전환하며 유영합니다. 소프트 로봇에는 공기를 가득 채울 가오리 모양의 지느러미가 부착돼 있어 물속에서 위아래로 빠르게 헤엄칠 수 있습니다.
쥐가오리의 유영 능력을 모방해 전례 없는 수중 기능을 탑재한 로봇을 완성했다.
해양생물의 점액질 적용한 선박, 수중 마찰력 줄여
해양생물의 점액층 구조와 기능을 모방한 기술도 있습니다. 물고기의 몸이 미끈거리는 이유는 물고기 피부의 점액샘에서 생성되는 미끄럽고 끈적한 점액이 표면을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양생물의 점액은 피부를 보호하고 바닷물과의 마찰을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포스텍 기계공학과 이상준 교수팀은 해양생물의 미끌미끌한 점액질 특성을 활용, 2023년 선박의 수중 마찰 저항을 줄이고 연비를 향상할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선박은 추진력의 약 60%를 해수와의 마찰로 잃습니다.

연구팀은 폴리스타이렌을 클로로폼에 녹인 다음 알루미늄 기판 위에 바르고 주변 수증기를 용액 표면에 물방울 형태로 응축시킨 뒤 증발시켰습니다. 그 결과 물방울이 증발한 자리에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미세한 물방울 모양 구멍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표면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구멍에 윤활유를 채워 넣어 해양생물 피부와 비슷한 미끌미끌한 저마찰 표면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플라이드 서피스 사이언스’에 게재됐습니다.

연구팀의 코팅 기술로 제작된 표면은 일반 알루미늄 표면보다 마찰력을 최대 39%까지 감소시켰습니다. 이는 비슷한 고속 유동 조건에서 얻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저마찰 성능입니다. 연구팀의 연구 성과를 잘 활용하면, 대형 선박 한 척당 연간 최대 40억~50억 원의 유류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이상준 교수의 설명입니다. 육상 운송체나 유류 수송 파이프 등 다양한 분야의 에너지 비용 절감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인공 광합성, 친환경 미래에너지 기술로 주목
자연 광합성을 모방한 인공 광합성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광합성은 식물이 햇빛을 이용해 뿌리로 빨아들인 물과 잎의 기공으로 흡수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로부터 포도당(탄수화물)과 산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인공 광합성은 이를 흉내 낸 기술로,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공 광합성의 ‘열쇠’는 빛을 받을 때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광촉매’입니다. 그동안 광촉매는 자외선을 흡수해 에너지로 전환하는 이산화타이타늄 광촉매 연구가 가장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산화타이타늄은 안정성이 떨어져 쉽게 손상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이를 대체하기 위한 광촉매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2022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이재성 교수팀은 햇빛을 이용해 폐수 속 질산염에서 암모니아를 얻는 광촉매를 개발했습니다. 즉 햇빛을 받은 광촉매가 화학반응을 일으켜 질산염을 암모니아로 바꾸는 원리입니다. 암모니아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도 잡고, 폐수 속 질산염도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죠. 연구팀은 이 광촉매로 아주 낮은 전압에서도 질산염을 95.6% 환원시켜 암모니아를 만들었습니다.

또 인공 광합성으로 수소를 생산하기도 합니다. 2020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소재분석연구부 김해진 박사팀은 햇빛으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신개념 광촉매를 개발했습니다. 황화아연 반도체ZnS 나노 막대기에 생체고분자 물질인 폴리 도파민을 나노 수준으로 균일하게 코팅한 이 광촉매는 생체고분자와 반도체의 복합체입니다.

이 광촉매 표면에 햇빛을 비추면 전자가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합니다. 이는 이산화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적인 인공 광합성 기술로, 매우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기존 반도체ZnS보다 두 배 이상의 수소를 생산합니다.

이 밖에도 자연을 모방한 기술은 많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 자연을 모방하여 과학이 발전할 수 있고, 과학이 발전하여 신기술로 자연을 더 보존할 수 있습니다. 생체모방 기술은 자연을 재창조하는 과정이자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생체모방 기술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이 있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자연에서 배운 기술로 과학이 발전한다.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청소년 과학 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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