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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슬기로운 기술 생활
디스플레이의 선명함을 구현하는 숨은 조율사,
‘희토류 광물’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스마트폰 화면은 수년이 흘러도 처음 샀을 때처럼 선명한 색을 구현합니다.
그 비결은 바로 디스플레이 속 희토류 덕분입니다. 희토류는 얇은 화면 뒤에서 어떤 물리적·광학적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걸까요?
지금부터 희토류의 정체와 다양한 쓰임새, 그리고 디스플레이의 선명함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알기 쉽게 풀어봅니다.

희토류 광물의 발광적 성질과 탁월한 자성을 기반으로 다채롭고 깨끗한 자연색을 구현한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의 시각적 효과.
1787년 스웨덴 육군 소위가 처음 발견
희토류는 말 그대로 희귀한 광물들을 말합니다. 원소 주기율표의 원자번호 57번에서 71번까지인 란타넘La, 세륨Ce, 프라세오디뮴Pr, 네오디뮴Nd, 프로메튬Pm, 사마륨Sm, 유로퓸Eu, 가돌리늄Gd, 터븀Tb, 디스프로슘Dy, 홀뮴Ho, 어븀Er, 툴륨Tm, 이터븀Yb, 루테튬Lu 등 란타넘족 원소 15개에 스칸듐Sc, 이트륨Y을 포함한 17개 원소가 희토류입니다.
원소 주기율표상의 스칸듐Sc, 이트륨Y 및 란타넘족 15개 원소를 포함한 17개의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원소들. 첨단 디스플레이부터 초강력 영구자석까지 현대 하이테크 산업 전반에 필수 비타민 역할을 하는 핵심 광물들이다.
희토류는 그 수가 적긴 하지만 이름처럼 매장량이 극히 드문 물질은 아닙니다. 금이나 석탄처럼 한곳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지 않고 넓은 지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채굴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화학적으로 분리해 정제하고 가공하는 과정도 약 20단계로 까다로워 희토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희토류 금속에서는 대부분 17개 원소가 동시에 발견됩니다. 철광석이나 각종 탄산염과 인산염 속에서 희토류가 발견되면 17개가 조금씩 다 들어 있습니다. 17개 원소를 각각 분리하려면 강력한 용매를 사용해 여러 번의 정제 과정을 거쳐야 하고, 라듐 같은 위험한 방사능 물질도 감수해야 합니다. 이 정제·가공 과정에서 동반되는 환경오염 물질 배출 또한 심각합니다. 추출 비용도 상당히 많이 듭니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희토류 발굴을 포기하는 국가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손에 넣기 쉽지 않은 데다 디스플레이·스마트폰 등 첨단 제품을 만들 때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희토류는 1787년 스웨덴 육군 소위 칼 악셀 아레니우스가 스톡홀름 부근에 있는 이테르비 마을의 채석장에서, 우연히 밀도가 크고 무거운 검은색 광석을 처음 발견한 게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광석이 발견된 마을 이름에 광물을 의미하는 접미사 ‘ite’를 따서 이테르바이트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1800년에 가돌리나이트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1792년 핀란드 광물학자 요한 가돌린이 이테르바이트 광물에서 최초의 희토류 원소인 이트륨의 산화물을 분리해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입니다.
전 세계 매장량 1억2000만 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희토류의 전 세계 매장량은 1억2000만 톤으로 추정됩니다. 이 가운데 4400만 톤(36.7%)이 중국에 있습니다. 희토류 매장량 1위 국가입니다. 브라질과 베트남도 각각 2200만 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1200만 톤, 인도는 690만 톤, 호주는 340만 톤, 미국은 140만 톤을 보유 중입니다.

매장량이 가장 많은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량의 70~90%를 담당할 만큼 주요 생산국이기도 합니다. 2018년 기준 글로벌 생산량은 17만 톤인데 중국이 70%인 12만 톤을 생산했습니다. 가공 능력 또한 9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등에서 중국 희토류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이유입니다. 미국은 지질조사국이 ‘핵심 광물’이라고 지정한 50개 광물 중 41개를 수입에 의존(2022년 기준)하고 있고, 수입하는 희토류 물량 중 74%를 중국에서 제공받고 있습니다.
첨단 제품의 필수 원자재인 희토류를 채굴 중인 중국 광산 전경.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들의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아 독자적인 원료화 및 대체 기술 확보 등 공급망 다변화가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북한에도 희토류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매장 규모는 북한 정부가 공개한 적이 없어 공식적으로 집계되진 않습니다. 한국광해광업공단은 북한에 2000만~4800만 톤의 희토류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추정치가 맞다면 중국의 매장량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땅속 마그마로 생긴 뜨거운 물로 만들어져
희토류는 보통 탄산염으로 이뤄진 염기성 화성암인 카보나타이트 암석이 있는 곳에 광상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광상은 광물이 집합해 채굴 대상이 되는 곳을 뜻합니다. 그래서 희토류를 찾을 때는 카보나타이트 광상을 기본 지표로 활용합니다.

호주국립대학교 지질학과 연구팀은 카보나타이트에 강한 압력과 높은 열이 가해지면서 희토류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연구팀은 특수한 캡슐 안에 카보나타이트로부터 변형된 암석을 넣은 후 강한 압력과 섭씨 200~1200℃의 높은 온도를 가해 희토류의 생성 과정을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캡슐 안에 희토류의 원료가 되는 인회석이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희토류가 생성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를 이끈 마이클 아넨버그 교수는 땅속에서 마그마가 식을 때 생기는 뜨거운 물인 열수가 카보나타이트 광상을 희토류 광상으로 바꾸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연구팀은 또 희토류가 사라지는 원인도 밝혀냈습니다. 카보나타이트는 알칼리성이 강합니다. 희토류가 알칼리 성분과 결합하면 쉽게 녹아 지하수를 통해 멀리 이동하면서 조금씩 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희토류의 능력은 독특한 전자 덕분
세계의 기업들이 희토류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른 원소와 달리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희토류 원소는 독특한 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자들이 궤도를 돌면서 어떤 자극이 가해지면 에너지를 내뿜는 것입니다. 희토류의 이런 특이한 성질과 전자가 만드는 에너지를 활용해 다양한 원자재로 사용합니다. 전자제품은 물론 광학유리, 금속 첨가제, 촉매제, 신재생에너지 등에 쓰입니다. 희토류를 ‘첨단산업의 비타민’, ‘제4차 산업의 쌀’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희토류 원소들의 화학적 성질 또한 매우 안정적입니다. 보통 다른 원소들은 양성자 숫자가 하나만 달라져도 성질이 완전히 바뀝니다. 하지만 란타넘족 희토류 원소는 특이하게도 다른 물질에 녹거나 결정 속에 들어가도 자신의 성질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건조한 공기 속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열전도성 또한 높고 자성적·발광적 성질도 탁월합니다. 디스플레이용 산화물에서 원래의 선명함을 그대로 유지하며 빛을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희토류는 금속 형태로서 반응성도 커서 합금을 만들기에도 유리합니다.
전자를 정렬시켜 영구자석 만들다
희토류의 쓰임새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자석입니다. 일반적으로 자력은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여 발생합니다. 희토류 전자들은 궤도를 회전하는 성질이 있고, 이때 전자의 자극이 동일한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에 자석에 흡착됩니다. 이를 이용하면 영구자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 세계 희토류 소비량은 연간 17만 톤 정도인데, 이 가운데 30%가 영구자석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영구자석은 자석 물질에 강한 자기장을 더해 강한 자석의 성질을 오래 보존합니다.

한 손에 착 들어오는 스마트폰 역시 강한 ‘희토류 자석’ 덕분에 탄생했습니다. 희토류의 하나인 ‘네오디뮴’은 초강력 자석입니다. 기존 영구자석에 비해 10배 이상 자성이 강합니다. 따라서 자기장을 만들기에 적합합니다. 네오디뮴 자석 3㎏으로 300㎏ 이상의 물체를 들어 올릴 만큼, 작은 크기로 충분한 자기장을 형성합니다.
전기차 모터와 첨단 전자제품용 고성능 영구자석의 핵심 원료인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NdPr 산화물 분말.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는 희토류 자석은 가볍고 작은 크기로도 기존 자석 대비 10배 이상의 뛰어난 자성을 발휘해 첨단산업의 필수 소재로 꼽힌다.
이러한 능력은 전기모터를 사용하는 모든 기계에 쓰여 혁명을 불러왔습니다. 전기차의 핵심인 모터는 물론 컴퓨터 하드디스크, 스마트폰 배터리, 비행기 제트엔진, 풍력·태양열 발전기 등에도 희토류 자석이 사용됩니다. 현재 자석 시장의 80%를 희토류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가 색을 잃지 않는 이유
희토류는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중요한 원자재입니다. 액정표시장치LCD, 발광다이오드LED 등 디스플레이들은 내부 산화물에 발광물질 입자를 넣어 빛을 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원리입니다. 희토류가 아닌 다른 발광물질은 산화물에 들어가면 화학적 변형이 일어나 시간이 지나면 빛의 선명함이 퇴색됩니다. 일반 발광물질은 주변 물질과 결합할 때 바깥쪽 전자의 배열이 뒤엉키면서 고유의 빛을 잃거나 변형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반면 희토류 원소들은 가장 바깥쪽 전자가 아닌, 안쪽에 있는 ‘4f 오비탈(전자궤도)’에서 빛을 내는 전자의 이동이 일어납니다. 이때 바깥쪽 전자들이 외부의 화학적 자극이나 물리적 충격을 단단히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에, 디스플레이 내부 산화물 속에 들어가 결정이 되거나 녹아들더라도 고유의 성질이 깨지지 않습니다. 이 보호막 덕분에 스마트폰을 수년 동안 거칠게 사용하더라도, 디스플레이 내부의 발광입자가 화학적으로 변형되지 않고 처음과 같은 선명한 색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단한 구조를 가진 희토류는 디스플레이가 완벽한 색감을 낼 수 있도록 빛의 3원색인 빨간색R·초록색G·파란색B을 정밀한 파장으로 뿜어내는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먼저 유로퓸은 디스플레이 기술에서 가장 뛰어난 원소입니다. 유로퓸이 에너지를 받으면 우리 눈에 선명하고 진한 빨간색으로 인식되는 특정 파장(약 610~620㎚)의 빛을 정확하게 내뿜습니다. 또한 터븀은 인간의 눈이 가장 편안하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청록색과 초록색 영역의 빛을 밝고 효율적으로 방출합니다. 이트륨과 세륨 등은 주로 파란색 빛을 내는 형광체 물질의 모체가 되어주거나, 빛의 밝기와 효율을 극대화하는 보조 촉매 역할을 담당합니다.
원소명(기호) 구현 색상/역할 디스플레이 내 핵심 메커니즘 및 특징
유로퓸Eu 빨간색R 에너지를 받으면 인간의 눈에 가장 선명하게 인식되는 특정 파장(610~620㎚)의 진한 적색광을 정확하게 방출함.
터븀Tb 초록색G 시각적으로 가장 편안함과 민감도를 느끼는 청록 및 초록 영역의 빛을 밝고 효율적으로 표현함.
이트륨Y 보조 촉매 주로 파란색B 빛을 내는 형광체 물질의 베이스(모체)가 되어 화면 전체의 조도를 조절함.
세륨Ce 보조 촉매 빛의 밝기와 발광 효율을 극대화해 수년이 지나도 디스플레이가 색을 잃지 않도록 돕는 지휘자 역할을 함.
하지만 디스플레이는 단순히 이 원소들을 섞어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매우 정밀한 나노 단위의 제어 기술을 통해 구동됩니다. 스마트폰에 전류가 흐르면, 디스플레이 내부의 백라이트나 자체 발광소자가 희토류 원자들에게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에너지를 받은 희토류 안의 전자들은 흥분하여 들떴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안정화되는데(천이 과정), 이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차이만큼을 순수한 빛(광자)으로 전환해 외부로 내뿜습니다.

이 빛을 더욱 극대화하기 위해 산화물이나 유기물 결정격자 내부에 아주 미세한 양의 희토류 원소를 정확하게 심는 ‘도핑’ 기술이 사용됩니다. 이 기술로 희토류 원소의 위치와 밀도를 나노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제어하면,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화면 정면을 향해 가장 밝고 깨끗하게 쏟아지도록 정렬시킬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화면에서 보는 보라색이나 황금색 같은 다채로운 색상은 희토류가 만들어낸 순수한 레드·그린·블루 빛의 세기를 디스플레이 프로세서가 실시간으로 세밀하게 조절하는 ‘조도 제어’를 통해 완성됩니다. 본연의 RGB 색상 자체가 탁하지 않고 워낙 순수하기 때문에, 이들을 디지털로 조합해 섞었을 때 자연색에 가까운 색감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희토류 매장량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광물 수요의 9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공급망이 막히면 우리 산업은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옛말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첨단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도 스스로 ‘구슬 꿰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다른 나라 광산에 묻힌 희토류의 원료화나 가공 기술을 개발해 제휴를 맺는다면, 우리가 먼저 희토류를 차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청소년 과학 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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