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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만 ‘속이는’ 게 아니다
박재용 작가

적의 레이더와 적외선 탐지 시스템을 기만하기 위한 스텔스 기술은 단순한 외형 설계를 넘어 전파 반사를 최소화하는 기하학적 구조, 전파를 흡수하는 첨단 소재 기술,
그리고 엔진의 열 방출을 제어하는 열역학적 설계가 집약된 복합 공학의 결정체다. 현대전의 판도를 바꾸는 ‘스텔스’ 기술의 원리를 살펴본다.

현대전에서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전투기다. 그래서 전투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미리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레이더와 적외선 탐지 시스템을 이용한다. 레이더는 하늘을 향해 발사한 전파가 물체에 맞고 돌아오는 성질을 이용한다. 물체에 부딪쳐 반사된 전파의 세기와 걸린 시간을 통해 물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거리가 얼마인지 가늠한다.

전투기로선 레이더를 속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텔스 전투기의 핵심이다. 하늘에는 전투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새도 날고, 곤충도 난다. 대기 중의 물방울이나 얼음, 먼지도 전파를 반사한다. 레이더는 맞고 돌아오는 전파의 양을 통해 크기를 짐작해서 전투기를 파악한다. F-15 같은 일반 전투기의 전파 반사량은 독수리 한 마리와 비슷하지만 연속된 움직임을 통해 독수리와 구분한다. 하지만 스텔스 전투기인 F-22의 반사량은 구슬 한 알 수준이다. 레이더로선 알 수가 없다.
한눈에 보는 스텔스 기술의 3대 핵심 메커니즘
1
전파 반사 제어 (기하학적 외형 설계)
동체 표면을 정밀한 각도의 평면과 곡면으로 구성해 적의 레이더 전파를 발사원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내는 기술이다.
2
전파 흡수 차단 (첨단소재 기술)
구조적 한계로 반사되는 일부 전파를 동체 표면의 특수 흡수 소재RAM 속으로 스며들게 만들어 진동·열에너지로 전환 후 소멸시킨다.
3
적외선 신호 억제 (열역학적 배기 설계)
엔진 노즐을 납작한 직사각형으로 만들어 배기가스의 온도를 빠르게 낮추거나, 배기구를 동체 상단에 숨겨 지상의 열 추적을 차단한다.
전파를 엉뚱한 곳으로 튕겨라
스텔스의 핵심은 반사다. 거울을 똑바로 놓으면 빛을 모두 광원으로 보낸다. 하지만 거울이 비스듬히 있으면 빛은 광원과 먼 쪽으로 반사된다. 첫 원리는 이것이다. 표면을 날카로운 각도의 평면으로 구성해 전파를 엉뚱한 곳으로 반사한다.

첫 스텔스기인 F-117은 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외형을 삼각형 평면 수백 개의 조합으로 만들었다. 당시는 둥근 면의 레이더 반사를 계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균형을 잡기도 어려웠다. 컴퓨터가 1초에 수천 번 자세를 고쳐주지 않으면 바로 추락할 수준이었다.

이후 컴퓨터 성능이 발전하면서 곡면에서의 레이더 반사를 제대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신형 스텔스기인 F-22와 F-35는 둥근 외형을 유지하면서도 모든 각도를 정밀하게 계산해서 전파를 엉뚱한 방향으로 반사한다.

또 하나, 스텔스 전투기에는 돌출된 구조가 없다. 미사일과 폭탄을 모두 동체 안에 보관한다. 안테나·볼트 하나도 전파를 반사하지 않도록 설계했다. 엔진 앞쪽도 문제다. 엔진 내부 터빈의 날개가 전파를 강하게 반사한다. 그래서 스텔스기의 엔진 흡입구는 S자 모양으로 꺾여 있다. 전파가 흡입구로 들어와도 안쪽 터빈까지 닿지 못하고 꺾인 구간의 벽면에서 흡수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반사된다.
전파를 삼켜라
정비를 위해 캐노피를 개방한 F-35 전투기 전경. 매번 표면 페인트를 덧칠해야 했던 과거 폭격기들과 달리,
레이더 흡수 소재를 동체 재료 자체에 통합하는 복합 소재 공학을 통해 스텔스 성능 유지 보수에 드는 시간과 정비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하지만 아무리 표면 각도를 잘 계산해도 동체 일부는 레이더 쪽으로 전파를 반사한다. 이를 처리하는 것이 레이더 흡수 소재Radar Absorbing Material다. 특수 페인트와 복합 재료로 동체 표면을 칠한다. 여기에 닿은 전파는 반사되지 않고 소재 안으로 흡수돼 진동하다가 사라진다. 이때 두께와 소재를 달리하면 특정한 주파수를 선택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소재가 아주 예민하다는 점이다. 비가 오거나 습기가 차면 성능이 떨어진다. 충격에도 약하다. 한 번 출격하고 돌아오면 매번 표면을 점검하고 손상된 부위를 다시 칠해야 한다. 정비에만 수십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B-2 스텔스 폭격기는 격납고 온도와 습도를 엄격하게 통제한다. F-35는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소재를 동체 재료 자체에 통합했다. 이제 페인트가 아니라 동체 자체가 전파를 흡수한다. 유지 보수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줄었다.
열을 숨겨라
레이더 말고 적외선 탐지 장치를 속이는 것도 중요하다. 적외선은 열을 본다. 전투기 엔진에서 나오는 엄청난 열은 하늘에서 유일한 존재다. 그래서 스텔스기는 엔진 노즐과 배기 경로를 특수하게 설계한다. F-22의 엔진 노즐은 납작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일반 전투기의 둥근 형태와는 전혀 다르다. 이 납작한 형태 덕분에 배기가스가 바깥 공기와 빠르게 섞이면서 온도가 낮아진다. B-2는 엔진 배기구를 동체 위쪽에 숨겼다. 아래에서는 날개에 가려 엔진 노즐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서의 전파 탐지와 적외선 열 추적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엔진 인프라를 기체 상단으로 집약시킨 B-2 스텔스 폭격기의 비행 전경.
스텔스기의 약점
스텔스기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스텔스 기술은 특정한 전파의 주파수, X밴드8~12GHz에 최적화되어 있다. 즉 더 긴 파장의 주파수를 내는 레이더에는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러시아와 중국은 조기 경보 레이더 일부를 이런 파장에 배치했다.

또 스텔스기가 기지국과 주고받는 통신 전파와 엔진의 소음도 문제다. 그래서 스텔스기는 일단 출발한 뒤에는 무선통신을 최소화한다. 또 엔진 소음을 줄이는 방법도 다양하게 쓰고 있다. 소음은 배기가스가 차가운 외부 공기와 만나면서 생기는 난류가 원인이다. 그래서 엔진 설계에서부터 소음이 줄어들도록 하고, 노즐도 톱니 모양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갑자기 속도를 높일 때 소음이 커지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자제한다. 다만 아주 높은 곳에서 날 때는 지상에서 들리는 소음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이의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적다.
차세대 스텔스
미국의 차세대 공중 지배 항공기NGAD와 중국의 J-36이 현재 개발 중인 대표적인 차세대 스텔스기다. 이들은 플라즈마 스텔스를 연구 중이다. 동체 주변에 플라즈마층을 형성해 전파를 흡수하거나 굴절하는 방식이다. 이 계획이 성공하면 비행기 자체의 모습을 좀 더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더 현실적인 방향으로는 스텔스기와 드론의 결합도 있다. 조종사가 탄 스텔스기가 중심이 되어 로열 윙맨Loyal Wingman이란 무인 스텔스 드론과 편대를 이룬다. 드론은 크기도 작고 반사 면적도 작다. 위험한 곳에 드론을 먼저 보내고 유인기는 뒤에서 지휘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드론 편대를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스텔스는 레이더 공학, 전자기학, 소재공학, 열역학, 공기역학이 동시에 맞물리는 복합 기술의 집합이다. F-117의 기괴한 각진 외형에서 시작해 F-22의 유려한 곡면으로, 그리고 드론 편대와 AI 제어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결국 하나로 수렴한다. 먼저 보는 쪽이 이긴다. 스텔스는 그 눈을 속이는 끝없는 기술 경쟁이다.
미 공군의 핵심 전략자산인 B-2 스텔스 폭격기. 전파를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내는 외형 구조와 레이더 전파를 삼켜 소멸시키는 흡수 소재 기술,
그리고 지상에서의 열 추적을 원천 차단하는 배기구 설계 등 현대 스텔스 기술의 정수가 집약되어 있다
박재용 작가
과학과 일상의 연결, 과학과 사회, 과학과 미래 환경에 관해 책을 쓰고 말하는 과학 저술가이자 커뮤니케이터다.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 년의 비밀〉 시리즈의 ‘멸종’, ‘짝짓기’, ‘경계’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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