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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ing Tomorrow>Teen+Tech
아치댐은 힘에
'맞서지' 않는다
박재용 작가

중세 교회의 높은 지붕과 수만 톤의 거대한 강물을 가둬두는 협곡의 댐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곡선을 통해 압력을 양옆으로 흘려보내는 '아치Arch' 구조다.
14세기 작은 댐부터 중국의 최첨단 댐까지, 아치형 댐의 과학적 원리와 곡선의 지혜를 함께 파헤쳐본다.

높은 건축물을 가능하게 한 아치 구조
중세 시절 지어진 서양 교회를 보면 하나같이 기둥과 기둥 사이가 위로 볼록한 아치 모양이다. 아치는 받치는 힘이 세기 때문이다. 아치를 구성하는 벽돌이 센 것이 아니라 구조가 힘을 옆으로 흘려 기둥에 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근 콘크리트 구조가 나오기 전 건물을 높이 지을 때는 아치가 필수였다.

조금 자세히 알아보자. 두 기둥 위에 콘크리트로 만든 막대를 가로로 놓았다. 그리고 막대 위에 아주 무거운 돌을 올린다. 이제 막대는 아래 방향으로 약간이나마 휘게 된다. 위쪽은 아래로 오목하게 휘면서 길이가 줄어든다. 이때 생기는 힘을 압축응력이라고 한다. 반대로 아래쪽은 볼록하게 휘면서 길이가 늘어난다. 이때 생기는 힘을 인장응력이라고 한다. 콘크리트나 벽돌, 돌 등은 압축응력에는 잘 버티나 인장응력에는 아주 약하다.

그런데 아치 모양으로 만들면 인장응력이 없어진다. 위에서 힘을 가하면 아치는 양 끝을 밖으로 밀어내려고 한다. 이때 양 끝이 고정돼 있으면 이 힘이 아치 전체를 따라 압축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인장응력이 압축응력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아치 전체를 따라 압축하는 힘은 결국 양 끝을 향하고, 양 끝의 기둥이 이를 버티는 구조가 된다. 그런데 기둥도 돌이나 콘크리트니 위에서 누르는 힘에 강하다. 옛 건축물이 몇 층 높이가 되어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아치 구조를 댐에도 쓴다. 댐은 물을 막는 건축물이다. 수십·수백 미터 높이로 담긴 물이 댐을 미는 힘은 어마어마하다. 이를 버티기 위해 댐은 무게를 이용한다. 예전에는 흙으로, 지금은 주로 콘크리트로 아주 두껍게 만든다. 여기다 아래를 넓고 위를 좁게 만들어 물의 압력을 아래로 분산시키는 방법도 쓴다. 이렇게 자체 무게로 버티는 댐을 중력댐이라고 한다. 제대로 버티려면 아래쪽 폭이 엄청나게 넓어야 한다. 하지만 아치를 만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류 쪽으로 볼록하게 만든 댐은 힘을 옆으로 흘린다. 이렇게 흘린 힘은 댐 옆의 암반으로 향한다. 댐 자체가 버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력댐에 비해 두께가 얇아도 된다. 건설 기간도 짧아지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되도록 아치형 댐을 만들려는 이유다.

여기서 하나 더, 수심이 깊을수록 위에 있는 물의 무게가 더해져 압력이 커진다. 수면 근처는 약하게, 바닥 근처는 강하게 민다. 그래서 아치댐은 위아래가 같은 모양이 아니다. 수압이 강한 아래쪽일수록 아치의 곡률이 크고 두께도 두껍다. 위쪽은 상대적으로 완만하고 얇다. 댐을 정면에서 보면 단순한 벽처럼 보이지만, 단면을 층층이 잘라보면 높이마다 곡선의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각 층이 그 높이에서 받는 수압에 정확히 맞춰 설계되어 있다.
아치댐의 원리
14세기경 지어진 이란의 쿠릿댐은 건설 이래 20세기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댐으로, 높이가 60m였다. 60m지만 당시 기술로는 대단한 성과였다. 아치 원리를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만든 최초의 댐은 1854년 완공된 프랑스의 졸라댐이다. 이전까지의 아치댐이 경험과 직관에 의존했다면 이때부터 공학적 설계가 안전을 담당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만든 후버댐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다. 콜로라도강의 엄청난 수압을 처리하기 위해 당시로선 전례 없는 정밀 계산이 동원되었다.
타임라인
경험에서 컴퓨터 수치 해석까지, 아치댐의 역사
14세기

이란 쿠릿댐Kurit Dam

높이 60m로 정밀 계산 없이 중세 공학 기술력으로 건설된 아치댐. 14세기 건설 이래 20세기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았던 댐.
1854

프랑스 졸라댐Zola Dam

수학적 공학 설계를 최초로 적용하여 아치 구조의 안전성을 공식 계산한 현대적 아치댐.
1930년대

미국 후버댐Hoover Dam

콜로라도강의 막대한 수압을 극복하기 위해 정밀 계산으로 한계에 도전한 거대 토목의 상징.
2021

중국 바이허탄댐Baihetan Dam

컴퓨터를 통해 수백만 개 조각으로 응력을 정밀 계산해 완성한 세계 최대급 아치댐(289m).
중국 바이허탄댐.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높이별 수압에 맞춘 형태와 두께를 계산해낸 현대 아치댐 기술의 결정체다.
그리고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아치댐의 역사가 바뀌었다. 이전에는 수천 가지 변수를 손으로 계산했기 때문에 설계에만 수년이 걸렸다. 하지만 유한요소해석이 도입되고 이를 컴퓨터로 계산하면서 설계 기간이 대폭 줄었고 정밀도는 더 높아졌다.

유한요소해석은 댐 전체를 수백만 개의 작은 조각으로 나누고, 각 조각에 걸리는 힘을 컴퓨터로 계산한다. 설계 변수를 바꾸면 즉시 전체 응력 분포가 다시 계산된다. 덕분에 댐 형태를 최적화하여 콘크리트 사용량은 줄이면서도 안전성은 더 높아졌다.

현재 최대 규모의 아치댐은 중국에 있다. 2021년 완공된 바이허탄댐은 아치댐 중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고 발전 용량은 세계 최대다. 중국은 21세기 들어 양쯔강 지류 협곡에 대형 아치댐을 집중적으로 건설하면서 이 분야 기술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모든 장소에 아치댐을 짓는 것은 아니다. 주로 좁은 협곡에 짓는다. 이유는 충분히 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강폭이 넓은 곳에 아치댐을 지으려면 거의 반원형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중력댐보다 댐 길이가 훨씬 길어져서 경제성이 없다. 또 하나, 거의 반원형이 되면 아치가 흘린 힘을 옆의 암반이 거의 직각으로 받게 되는데 이러면 암반이 단단해도 위험하다. 그래서 비교적 폭이 좁은 곳에 아치를 쓴다. 또 하나 조건이 있다. 옆의 암반이 단단해야 한다. 물의 힘을 옆으로 흘려 암반으로 보내니 힘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만약 암반이 버티지 못하면 무너지고 만다.
미국 콜로라도강 협곡에 지어진 글렌캐니언댐. 단단한 암벽과 좁은 수로라는 아치댐의 핵심 입지 조건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단단한 암반도 한계가 있다. 지진에는 암반 자체가 흔들린다.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파 세 가지가 오는데 각각의 진동 방향이 다르다. 위아래로도 흔들리고, 수평 방향으로도 흔들린다. 아치댐은 물의 힘을 암반으로 전달하는 구조인데, 암반이 흔들리면 설계할 때 계산하지 않은 방향으로 압력을 받게 된다. 콘크리트는 이런 예상치 못한 방향의 힘에는 취약하다. 그래서 지진이 잦은 지역에 아치댐을 지을 때는 지진 하중을 별도로 계산해 설계에 반영한다. 하지만 아무리 정밀하게 설계해도 자연이 만들어내는 변수를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

기후변화도 새로운 변수다. 강수 패턴이 바뀌면서 저수지 수위가 설계 당시 예상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생긴다. 수위가 달라지면 수압 분포가 달라지고, 아치에 걸리는 힘의 균형이 흔들린다. 100년을 버티도록 설계된 댐이 50년 만에 안전 마진을 재계산해야 하는 상황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치댐은 힘에 맞서지 않는다. 물이 미는 방향 그대로 곡면을 따라 흘려보낸다. 두꺼운 벽이 아니라 휜 형태가 물을 막는다. 중세 교회의 아치가 천 년을 버텼듯, 협곡 사이에 휜 콘크리트 한 장이 강 하나를 붙잡고 있다.
박재용 작가
과학과 일상의 연결, 과학과 사회, 과학과 미래 환경에 관해 책을 쓰고 말하는 과학 저술가이자 커뮤니케이터다.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 년의 비밀〉 시리즈의 ‘멸종’, ‘짝짓기’, ‘경계’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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