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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Film&Tech
문명이 사라져도 인간의 탐욕은 여전?
영화 <모털 엔진>
이경원 과학 칼럼니스트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사는 한 자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자원에 대한 지나친 탐욕은 결국 파멸을 불러왔는데….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생물이라지만 파멸의 역사도 반복할 것인가.

영화 포스터.
SF 장르 중에서 꾸준히 만들어온 하위 장르가 바로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다. 인류 문명이 붕괴한 이후를 다룬 작품이다. 기존의 법과 제도, 도덕과 관습이 무너진 상태에서 인간의 본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해당 장르의 주된 매력이라 할 것이다.

영국 SF 소설가 필립 리브(1966~)가 쓴 〈견인 도시 연대기Mortal Engines Quartet〉 시리즈 역시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다. 전권이 한국어로 번역돼 국내에 소개된 이 시리즈 중 첫 권인 〈모털 엔진Mortal Engines〉을 2018년 극화한 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동명의 영화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후의 미래. 인류는 또 다른 세계대전인 이른바 ‘60분 전쟁’을 치른 끝에 공멸하고 쇠락해버렸다.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황무지에서 다시 문명의 꽃을 피웠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동식 도시인 견인 도시와 고정된 재래식 도시에 살았다. 견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철저한 약육강식 원리에 입각한 견인 도시 진화론을 믿었다. 견인 도시 진화론이란 강한 견인 도시가 약한 도시를 무력으로 점령, 완전 분해해 자신의 유지와 성장을 위한 재료로 쓰는 것이 정당하다는 사상이다. 이 때문에 견인 도시 시민들은 재래식 도시 시민들과 앙숙지간이다.

지금은 말라버린 구 북해 지역을 휩쓸고 다니는 견인 도시 ‘런던’. 이 도시의 역사학자 테데우스 밸런타인(휴고 위빙 분)은 과거 문명의 첨단무기 ‘메두사’를 발견하고, 이 무기로 재래식 대도시 ‘샨 구오’를 점령 및 흡수하려 한다. 그러나 테데우스의 메두사 획득 과정에서 어머니를 잃은 소녀 헤스터 쇼(헤라 힐마 분)가 복수를 위해 테데우스를 죽이고자 나타난다. 테데우스와 헤스터 간의 대립은 과연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인가? 그리고 테데우스의 메두사는 과연 이번에도 세계를 파멸시킬 것인가?
역사와 사회에 대한 SF적 풍자
이 영화를 보면 제국주의 시대 이래 현대에 이르는 각국의 자원 획득 경쟁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점이 재미있다.

테데우스의 견인 도시 런던은 이름도 영국 수도 런던에서 따온 데다, 아예 도시 정면에 거대한 유니언 잭(영국 국기)을 그려 넣고 있다. 영국이 어떤 나라인가. 근현대 제국주의 시절 세계 최강국이었지 않은가. 그리고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점령해 빼앗은 자원으로 그 힘을 유지 및 발전시켰고 말이다. 그런 부분은 영화 초반 작은 도시를 점령해 분해, 자신들에게 필요한 자원으로 쓰는 모습에서 잘 나타나 있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의 자원만 착취한 것이 아니다. 획득한 식민지인들을 노예로 부려 먹었다. 본토인 사이에서도 계층을 나누었다. 런던이 포획한 상대 도시의 시민들을 하층민 취급하고, 자신들 내부에서도 계급을 나누는 것은 그 역사적 사례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제국은 붕괴되었지만 아직도 왕족·귀족 등 특별 신분이 엄존하는 영국이 아닌가.

런던과 대립하는 재래식 도시 샨 구오를 보면 과거 역사 속 동서양 간 역학 관계의 패러디가 더욱 잘 보인다. 백인이 다수인 런던과 달리 샨 구오는 시장을 비롯해 주민 대다수가 아시아계다. 런던은 문자로 알파벳을 쓰는 반면 샨 구오는 한자와 인도 문자를 사용한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끊임없이 자원을 탐하며 확장해야만 유지되는 서구식 제국주의·자본주의와 지속 가능한 공존을 추구하는 동양의 생태주의·전통주의 간의 대립을 시각화한 것 같아 흥미롭다.

이전 전쟁의 최종 병기 ‘메두사’를 발굴, 이것으로 샨 구오와 결판을 내려는 테데우스의 모습은 과거 냉전시대에 여차하면 핵으로 끝장 보려고 했던 미·소의 강경파 지도자들과 붕어빵이다. 그러고 보니 현재까지 계속 후속편이 나오고 있는 인기 게임 〈문명Civilization〉 시리즈의 첫 편(1991년)에서도 경쟁 민족들을 핵전쟁으로 몰살시키고 플레이어의 민족만 살아남아 지구를 지배하는 엔딩을 선택지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경쟁 상대를 모두 죽이고 자원을 독차지하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어두운 본성인가? 만약 그렇다면 인간이 핵이라는 공멸의 최종 병기를 손에 쥔 지금, 그 본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테데우스의 견인 도시 ‘런던’. 아무리 봐도 과거 영국을 필두로 한 서구 제국주의를 형상화한 모양새다.
테데우스가 발굴한 옛 문명의 최종 병기 ‘메두사’. 인간 본성의 밑바닥은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 영화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부실한 만듦새는 아쉬워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면 이런 부분이 한눈에 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영화는 일반인에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원작 세계관에 대한 설명은 부실한 대신, 시각적 볼거리에만 너무 치중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고, 원작 소설이 4권짜리 시리즈로 마감된 데 비해 후속작도 내지 못했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터넷 검색까지 필요할 정도로 다소 불친절한 작품이다.

하지만 “제3차 세계대전의 무기는 무엇일지 모르지만, 제4차 세계대전의 무기는 돌과 몽둥이가 될 것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명언에 숨은 함의를 느끼고 싶다면 한 번쯤 감상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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