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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속 대한민국, 선택지는 있는가?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미국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최우선에 두고 글로벌 기술 질서를 주도하고 있으며 트럼프의 귀환으로 세계의 판도는 또 한 번 큰 방향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선 대한민국. 기술, 산업, 외교 전반에서 선택의 무게는 더 커졌고, 그만큼 가능성도 열려 있다.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한국은 현재 규제 장벽 완화 카드를 놓고 미국과 협상을 앞두고 있다.
규제 장벽 완화 카드 놓고 시작될 미국과의 협상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미국에 들어오는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고, 약 60여 교역국에는 이보다 높은 관세를 매기는 ‘상호관세’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에 대해서도 25%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관세 규모는 상대국의 관세뿐 아니라 검역, 규제 등 ‘비관세 장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했다고 한다. 올해 3월 31일 발표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2025년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의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한 것은 자동차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제한하는 환경규제, 한국의 무기 수입 시 외국 업체에 기술 이전을 요구하는 절충교역 제도,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금지 조치, 디지털 무역장벽으로서 망 사용료 부과 법안, 온라인 플랫폼 규제, 지도를 포함한 위치 정보 데이터의 국외 반출 제한, 글로벌 매출을 기준으로 한 개인정보보호법상 과징금 부과, 개인정보보호법상 해외 이전 제한,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른 국가안보 관련 핵심 기술에 대한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 사용 불허 조치, 지상파 방송에 대한 외국인 출자 금지, 케이블·위성 방송 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 제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외국인 지분 소유 금지 등 외국 기업의 시장 접근성과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들을 비관세 장벽으로 언급했다.

트럼프는 상호관세 정책 발표 후 세계 증시 급락과 미국 국채 투매 및 금리 인상 등이 발생하자 지난 4월 9일 향후 90일간 상호관세를 유예하고 개별 국가와 협상을 통해 관세 인하가 가능하도록 했다. 한국은 90일간 조선 분야의 협력, 주한 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 확대, 알래스카 LNG 협력과 함께 미국이 주장하는 규제 장벽 완화 카드를 가지고 미국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여전히 추격 중인 한국
미국 대비 전 산업 평균 기술 수준 격차
자료: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2023년)
기술 패권 경쟁의 심화 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이 발표한 ‘2023년 산업기술 수준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전 산업 평균 기술 수준은 최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비교할 때 0.9년 격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과 미국의 기술 격차는 1.2년으로 한국보다 0.3년 더 길었다. EU와 일본의 경우 0.39년, 0.43년에 그쳤다. 중국은 한국과 4개월 격차에 불과한데 2025년 현재 한국을 추월한 것으로 추정된다.

AI 분야로 한정해서 보면, 4월 13일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발표한 ‘AI 인덱스 202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파운데이션 모델’을 성공적으로 개발할 사례는 없는 것으로 평가했다.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높은 평가를 받거나 각종 연구 논문에 최소 1000회 이상 인용된 AI 모델인 ‘주목할 만한 모델’에는 LG 엑사원 3.5 32B가 유일하게 포함됐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 40개, 중국 15개, 프랑스 3개, 한국·캐나다·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각 1개 등이다. AI 인재 이동 지표는 –0.3으로 인재 유출이 더 많고 민간투자는 위축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은 추격자 전략에서 퍼스트무버 전략으로 전환하지 못한 채 중국에 추격을 당하고 있다. 일부 분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첨단 기술에서 중국에 밀려났고, 인재 유출, 투자 위축까지 겹치면서 총체적인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최근 미국의 통상 및 규제 개선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대선 정국으로 인해 정부의 비전 제시와 협상에는 신중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특히, 게임체인저가 될 AI 분야의 경우 중국이 미국과의 격차를 줄이고 프랑스가 선전하면서 AI 3대 강국 목표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미국·중국에 없는 기술 필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냉정하게 우리의 성과와 실패를 점검하고 변화된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발전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술력 확보와 인재 양성이다. 인재가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므로 양자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기술개발, 인력 양성에서 중요한 전략은 정권교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중장기적 안목에서 선제적인 투자, 개별 기업이나 기관 중심이 아닌 산학연관이 원팀이 되는 협력적 연구, 모든 기술이 아닌 경쟁력 있는 분야에 대한 선택과 집중, 무엇보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자본, 기술, 인재를 집중할 수 있는 정부 주도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현재 우수한 이공계 인재가 의대에 진학하거나 이공계에서 경력을 쌓은 후에도 미국으로 이주해 체류하는 현상은 스타트업 창업을 통해 안정적 수익이나 부유한 삶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정부든 기업이든 스타트업에 대해 실패를 용인하는 투자, 중장기적 투자, 그리고 선택과 집중을 하는 투자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또한 응용학문과 기술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수학, 과학 등 기초 학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우수한 국내외 인재가 한국에서 연구개발을 할 수 있도록 연구비 지원 확대, 가족 정주 여건 및 생활 지원 강화, 글로벌 수준의 연구 환경 조성 등이 필요하다.

과감한 규제 혁신 역시 필수적이다. 예컨대, 반도체법상 52시간 규제 예외 도입, 엄격한 데이터 규제 완화 등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규제 완화를 빠르게 시행해야 한다. 미국, 중국 등에 없는 기술, 서비스 규제를 과감히 개선함으로써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해야 한다. AI 시대에 새로운 시각에서 과감하게 규제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국내 사업자들은 한국과 다른 규제 환경에서 기술 및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미국, 중국 등의 사업자들과 경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든 기업이든 스타트업에 대해 실패를 용인하는 투자,
선택과 집중을 하는 투자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사진은 지난 4월 열린 K-휴머노이드 연합 출범식의 모습
한국은 퍼스트무버가 되기 위해 성공과 실패를 점검하고 변화된 상황에 적응할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고려대 법학과 출신으로 서울대에서 법학박사를 받았으며 하버드 로스쿨 방문학자를 거쳤다.
정보통신부, 국무조정실과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 데이터·AI법센터 대표를 겸하고 있다.
행정 경험과 법률 실무를 기반으로 AI, 데이터, 개인정보, 인터넷, 정보보안, 방송, 통신 등 ICT 전 분야 법과 정책에 정통한 권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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