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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모달리티와 K-바이오파운드리,
복잡한 바이오 설계를 산업화하는 새로운 엔진
이대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연구센터장

세포와 유전자, AI가 융합된 차세대 바이오는 이제 단일 치료제 개발을 넘어 거대한 경우의 수를 빠르게 탐색하는 ‘플랫폼 싸움’으로 진화했다.
세계 최대 바이오 박람회인 ‘BIO USA 2026’을 앞두고, 대한민국이 기술 발견을 넘어 정밀 설계의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청사진을 제시한다.

최근 바이오산업의 흐름을 한 단어로 압축하면 복잡성이다. 과거의 의약품 개발은 비교적 명확한 표적과 단일한 작용기전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제 바이오는 세포, 유전자, RNA, 단백질, 미생물, 면역체계, 인공지능이 서로 맞물리는 복합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항체 치료제, 세포·유전자 치료제, mRNA 백신,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합성생물학 기반 치료제 등 이른바 차세대 모달리티는 기존 의약품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질환 영역을 열고 있다.

문제는 가능성이 커진 만큼 설계와 제조의 난도도 함께 높아졌다는 점이다. 차세대 모달리티는 단순히 좋은 후보물질을 찾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유전자를 넣을 것인가, 어떤 세포에서 발현시킬 것인가, 어느 정도 세기로 조절할 것인가, 생산공정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인가,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예측 가능한 효과를 낼 것인가까지 고려해야 한다. 연구실에서 작동하는 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반복 가능하고 안전한 제품으로 이어지려면, 설계·제작·시험·학습을 빠르게 순환시키는 체계가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바이오파운드리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생명공학의 자동화된 연구·제조 플랫폼이다. 반도체산업에서 설계도에 따라 칩을 제작하는 파운드리가 산업 발전의 핵심 인프라가 되었듯, 바이오파운드리는 생명체와 생체분자를 설계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표준화·자동화·고속화한다. DNA 설계, 유전자 합성, 세포 제작, 고속 분석, 데이터 해석, 인공지능 기반 재설계를 하나의 순환구조로 연결함으로써 연구자의 직관에만 의존하던 바이오 연구를 데이터 기반 공학으로 전환한다.
특히 차세대 모달리티 개발에서
바이오파운드리는 세 가지 측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합성생물학연구센터 이대희 박사 연구팀. 자체 개발한 다중 유전자 고속 조립 플랫폼
‘EffiModular’를 바이오파운드리 자동화 시스템에 적용하여
3일 만에 120가지 버전의 베타카로틴 생산 균주 라이브러리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2025년 12월 4일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이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AI 바이오 기업을 방문해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 분석 기술’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첫째, 탐색 속도를 높인다. 새로운 치료 모달리티는 설계 가능한 조합이 매우 많다. 예를 들어 세포 치료제에서는 수용체 구조, 신호전달 도메인, 발현 조절 요소, 세포 배양 조건이 모두 성능에 영향을 끼친다. RNA 치료제에서는 서열, 구조, 전달체, 안정성, 면역반응 회피 전략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와 합성생물학 기반 치료제에서는 미생물이 체내에서 어떤 신호를 감지하고 어떤 치료 기능을 수행할지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씩 실험하기에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자동화와 고속 스크리닝을 통해 이 거대한 설계 공간을 빠르게 탐색하게 해준다.

둘째, 실패를 데이터로 바꾼다. 생명공학 연구에서 실패한 실험은 흔히 버려지는 결과로 취급된다. 그러나 바이오파운드리에서는 성공한 조건뿐 아니라 실패한 조건도 중요한 학습 데이터가 된다. 어떤 설계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어떤 조건에서 발현이 낮아졌는지, 어떤 조합에서 독성이 증가했는지를 축적하면 다음 설계를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인공지능과 결합될 때 더욱 강력해진다. AI는 대규모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나은 후보를 예측하고, 바이오파운드리는 그 예측을 다시 실험으로 검증한다. 이 순환이 반복될수록 바이오 연구는 경험 중심에서 예측 중심으로 이동한다.

셋째, 산업화를 앞당긴다. 차세대 모달리티의 경쟁력은 과학적 독창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품질, 재현성, 생산성, 안전성, 규제 대응 가능성이 함께 확보되어야 한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실험의 표준화와 데이터 관리 체계를 통해 초기 연구 단계부터 산업화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이는 후보물질 발굴과 공정 개발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연구 성과가 실제 제품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BIO USA 2026’에서 주목해야 할 흐름도 이와 맞닿아 있다. 글로벌 바이오산업은 AI와 디지털 헬스, 차세대 바이오 치료제, 세포·유전자 치료제, 감염병 대응, 정밀의학, 바이오 제조 역량을 핵심 의제로 다루고 있다. 이는 바이오산업의 경쟁축이 단일 기술에서 플랫폼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치료제를 얼마나 잘 만드는가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모달리티를 얼마나 빠르게 설계하고, 검증하고, 제조하고, 임상과 시장으로 연결할 수 있는가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를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우수한 바이오 연구 인력, 세계적 수준의 정보통신 기술, 정밀 제조 역량, 병원·임상 인프라, 그리고 빠르게 성장하는 바이오벤처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국가 차원의 바이오파운드리 인프라가 결합된다면 한국은 차세대 모달리티 개발에서 전략적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BIO USA 2025’ 한국관 전경. 다가오는 ‘BIO USA 2026’에서 주목해야 할 흐름 역시 다양한 모달리티를 다루는 플랫폼 경쟁이다.
다양한 치료제를 빠르게 설계하고 시장과 연결하는 K-바이오파운드리가 국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 엔진이 될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방향성이 필요하다.
첫째, 바이오파운드리를 단순한 장비 집합이 아니라 국가 바이오 설계 인프라로 보아야 한다. 자동화 장비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설계 소프트웨어, 표준화된 실험 프로토콜, 고품질 데이터베이스, AI 분석 체계, 전문 운영 인력이 함께 갖추어져야 한다. 바이오파운드리의 본질은 장비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설계–제작–시험–학습 시스템이다.

둘째, 기초연구와 산업 수요를 연결해야 한다.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은 새로운 생물학적 원리와 플랫폼 기술을 만들고, 기업은 이를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한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이 둘을 연결하는 중간 지대가 되어야 한다. 초기 아이디어가 빠르게 검증되고, 유망한 결과가 공정 개발과 사업화로 이어질 수 있는 개방형 협력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규제와 안전을 기술 개발의 후반부가 아니라 초기 단계부터 함께 설계해야 한다. 차세대 모달리티는 생체 내에서 작동하거나 유전정보를 직접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전성·추적성· 품질관리·윤리적 수용성이 매우 중요하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이러한 요소를 데이터로 관리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연구개발 초기부터 규제과학과 연결된다면 기술의 사회적 신뢰도 함께 높아진다.

넷째, 글로벌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바이오는 국경을 넘어 움직이는 산업이다. 새로운 치료 기술, 생산 플랫폼, 임상 네트워크, 투자 생태계는 모두 국제적으로 연결돼 있다. ‘BIO USA’와 같은 글로벌 무대는 단순히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라 협력 파트너를 찾고, 한국의 전략적 위치를 보여주는 장이다. 한국의 바이오파운드리는 국내 연구자와 기업을 지원하는 인프라를 넘어, 글로벌 공동연구와 산업 협력의 허브로 발전해야 한다.
2025년 11월 12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싱가포르국립대학교NUS 간의 합성생물학 기반 첨단 바이오 제조 협력 업무협약MOU 현장.
차세대 모달리티 고속 설계를 위한 글로벌 공동연구 및 혁신 생태계 구축의 일환이다.
차세대 모달리티 시대는 바이오 연구자에게 큰 기회이자 까다로운 숙제를 동시에 던진다. 질병을 더 정밀하게 이해하고, 환자 맞춤형 치료를 설계하며, 기존 치료제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그 길은 복잡하다. 복잡한 생명 시스템을 다루기 위해서는 더 체계적인 설계 방법, 더 빠른 실험 플랫폼, 더 똑똑한 데이터 활용, 더 강한 제조 역량이 필요하다.

바이오파운드리는 바로 그 복잡성을 다루기 위한 새로운 엔진이다. 그리고 K-바이오파운드리는 한국 바이오산업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적 기반이 될 수 있다. 바이오의 미래는 더 이상 발견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이제는 설계하고, 만들고, 시험하고, 다시 배우는 나라가 앞서간다. 한국이 이 순환을 가장 빠르고 정교하게 구현한다면, 차세대 모달리티 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이다.
이대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합성생물학연구센터장
2011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합류한 이래 바이오화학연구센터, 바이오합성연구센터, 합성생물학전문연구단을 거치며 국내 합성생물학 연구의 기틀을 다졌다.
현재 합성생물학연구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대한민국 바이오파운드리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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