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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기술정책 대전환:
세계 기술 질서의 재편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의 기술 정책 기조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반도체, 이차전지(전기차 배터리), 바이오, AI 등 국가전략 기술 산업 전반에 걸쳐 정책 방향이 달라지고 있으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구도와 공급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와 연방 예산 긴축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전반적 기조는 ‘미국 우선주의’와 강경한 대중국 기술 견제로 요약되며,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광범위한 정책 철학이 여러 기술 분야에도 반영되고 있다​.

트럼프의 다양한 기술 정책 방향의 배경에는 연방예산 긴축과 규제 완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론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 등을 포함한 자문진에게 연방 지출 2조 달러 삭감 아이디어를 모색하도록 지시했고, 정부 지출을 대폭 줄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기술 정책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와 마찬가지로 기초과학 기관 예산 삭감을 시도하고 있는데, 의회와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다만 CHIPS법이나 IRA 같은 산업육성 프로그램들은 완전 폐기보다는 조건 수정 및 집행 속도 조절 방식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

대중국 견제 강화는 트럼프 행정부 기술 정책의 핵심 배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부터 미·중 기술 디커플링을 추진해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안보상 민감한 첨단 기술의 중국 유출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연구개발 인력 및 연구 교류 방식을 조정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중국과의 공동 연구, 기술 교류, 유학생 교류 등도 보다 신중하고 선택적인 방식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조는 미국 내 연구 환경에도 변화를 가져와, 연구 현장에서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려는 관리 체계가 강화되는 추세다. 동시에 이러한 전략은 동맹국들과의 기술 협력 구조를 재조정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자문진에게
연방 지출 2조 달러 삭감 아이디어 모색을 지시했다.
트럼프 2기 주요 기술 분야 정책 변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하면서 미국의 과학기술 정책 기조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반도체산업 지원 의지를 유지하면서도 CHIPS 법안의 일부 조건을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해외 확장 제한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텔이 중국 내 후공정 시설 투자 계획을 발표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제하려는 조짐을 보였다. 대중국 수출 통제 역시 더욱 확대하고 있다. 해외 직접 제품 규칙FDPR을 통해 해외 생산 반도체까지 중국으로의 수출 차단 가능성을 검토 중이며, 관세 부과와 같은 간접적 조치도 고려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대규모 지원책과 수출제한 조치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인텔,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은 CHIPS 보조금을 기대하며 미국 내 새로운 팹 건설을 진행 중이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재검토로 일부 프로젝트는 지연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중국은 제재 우회 기술을 개발하며 7nm급 스마트폰 칩을 출시하는 등 자체 기술력 향상에 집중하고 있고, 대규모 반도체 펀드를 가동해 핵심 반도체 기술의 글로벌 점유율 확대를 추진 중이다. 동맹국들도 전환점에 놓였다. 대만 TSMC는 미국 투자 확대와 대만 내 첨단 공정 유지 사이에서 전략을 재고 중이고, EU는 EU CHIPS법을 통해 2030년 세계 반도체 생산의 2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차전지

전기차
트럼프 대통령은 친환경차 전환 속도를 조정하는 한편, 핵심 광물 확보 등 전략산업 지원은 지속하고 있다.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관련 연방 지출의 재검토와 함께, 전기차EV 세액공제 적용 기준을 강화함으로써 해외 부품 비중이 높은 차량은 혜택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주 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에 대한 연방 차원의 대응을 모색하고 있으며, 자동차 가스 배출 규제 완화도 함께 추진될 수 있다.
한편,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의 안정성과 기술 자립성 확보를 위한 전략적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캐나다, 호주 등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공급 기반을 다변화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EV 및 부품 생산 공장의 리쇼어링 투자에 대해서는 세액공제를 유지하거나 확대할 여지도 있다.
인공지능AI
‘규제 부담 경감’과 ‘민간 주도 성장’을 기조로 취임 직후 발표한 미국 AI 리더십 장애 제거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기관의 AI 리스크 평가 및 공정성 보고 의무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예산관리국OMB은 부처별 AI 파일럿 및 업무 자동화 프로젝트의 신속 승인 트랙을 마련해, 도입 기간을 절반 수준으로 단축하도록 했다.
또한 의회에 상정된 CREATE AI 법안을 통해 중소기업·지방대에 GPU 바우처 지급, 러스트벨트 ‘AI 제조 특구’ 지정, 세액공제·전력‑인프라 패키지 지원 등을 포함해 지역 산업 재생과 제조 리쇼어링을 결합한 인센티브 설계를 추진하고 있다.

2025년 1월 21일 발표된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도 상징적이다. 트럼프 대통령, OpenAI, 소프트뱅크, 오라클 등이 주도하는 민관 합작 벤처는 2029년까지 5000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전역에 20개의 초대형 AI‑전용 기가데이터센터와 약 15GW 규모의 전원 설비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미국 AI 리더십 확보 전략의 핵심으로 내세우며, 세제 혜택과 심사 간소화를 약속했다.

이러한 기술·전략적 전환은 단순한 산업정책을 넘어 국제적 AI 패권 경쟁의 구도를 재편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명령은 ‘허가 간소화’와 ‘세제 혜택’을 강조하여, 동종 데이터센터라 하더라도 입지와 공급망 조건에 따라 접근성이 크게 달라지는 환경을 만들고 있으며, AI 칩 공급 제한(반도체 정책) 및 전력망 확충(에너지 정책)과 교차 작용하여 국가 간 AI-전력 복합 패권 경쟁을 촉발하고 있다. 이에 중국은 자체 GPU 및 대형모델 생태계를 기반으로 제재 회피-내수 확대 전략을 강화하는 반면, 미국·EU·동맹은 ‘안보 기반 FDI 제한’과 공동 검증 체계를 강화하고 있는 등 다양한 복합 변수가 얽힌 세계 AI 산업 지형을 다시 그리는 전면적 재편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첨단바이오
바이오경제 이니셔티브를 철회하며 정부 주도의 바이오산업 육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원료의약품API 리쇼어링과 백신 제조시설 확대 등 바이오산업 재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임상시험 기간 단축과 심사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첨단 바이오 분야에서는 이처럼 관료주의 타파를 강조하며 혁신 저해 요소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AI 각 분야에서 보조금 정책의 조건 완화, 규제 철학의 변화, 무역통제 강화 등 뚜렷한 정책 전환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미국 우선주의와 대중국 경쟁 심화라는 구조적 동인이 자리한다. 미국 정책의 변화는 글로벌 공급망의 방향과 속도를 바꾸고, 동맹과 경쟁국들의 대응을 유발하며, 세계 기술 패권 판도를 재편하고 있다. 기술의 탈세계화와 블록화 경향이 짙어지는 가운데, 각국은 자국의 기술 주권을 지키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격변기에 민첩하고 전략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다. 미국과 협력을 기반으로 하되, 한국 산업의 핵심 이익을 지키고 미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한 자주적 노력이 요구된다.

다행히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선도기업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중 모두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유연한 외교가 가능하다. 이 강점을 살려 가치사슬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기술혁신을 지속한다면, 한국은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도 위상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KISTEP
서울대 전기공학부에서 미래 전력 시장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전력공사 경제경영연구원을 거쳐, 현재 한국과학기술평가원에서 일하고 있다.
탄소중립, 국가전략기술 관련 R&D 기획 업무를 맡았고, 현재 R&D사업 예비타당성 평가와 함께 관련한 R&D 정책, 에너지 전환 관련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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