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열기
R&Dism>공학자의 시선
기후변화 시대, 식물과 미생물
상호작용의 비밀을 파헤치다
김종흠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교수

김종흠 포항공대 교수 연구팀은 식물과 미생물, 그리고 외부 환경이 서로 얽혀 작용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연구한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식물의 질병 양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 해당 연구는 인류의 식량안보와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한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연구팀은 식물–미생물–환경 상호작용의 메커니즘을 분자 수준에서 규명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식물보호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기후변화와 우리나라의 식물병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20년의 지구 평균 표면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09℃ 상승했으며, 그 결과 전 지구적으로 극단적인 기상이변이 증가하고 있다.

농업 측면에서 고위도 지역에서는 일시적인 이득이 관찰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중위도에 위치하고 국토 면적이 작은 지역은 이러한 변화에 특히 취약하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여름철 벼멸구 피해가 급격히 확산되었고, 올해는 벼 깨씨무늬병이 농업재해로 인정되어 피해 조사가 진행 중이다. 또한 땅콩·콩·토마토·감자 등에 피해를 주는 흰비단병(생장 적온 30℃)과 균핵마름병(생장 적온 35℃) 등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번성하는 식물병이 국내에서도 보고되기 시작했다.
자연 상태에서 대부분의 미생물은 식물에 비병원성Non-pathogenic으로 작용하며, 근권Rhizosphere이나 엽권Phyllosphere에서 공생Symbiotic 또는 중립적Commensal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농업환경에서는 단일 품종이 대규모로 재배되어 유전적 다양성이 낮고, 고생산성 품종일수록 육종 과정에서 방어 관련 유전자를 잃는 경우가 많아, 화학적 병충해 방제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화학 방제는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며, 이는 다시 식물 저항성을 약화시키고 약제 내성을 지닌 병해충을 증가시킨다. 결국 더 많은 농약 사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이상기후는 식물의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농업 생태계에 예측 불가능한 피해를 확산시키고 있다.
  • ❶ 적온 : 생물이나 미생물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온도.
  • ❷ 비병원성 :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 특성.
  • ❸ 근권 : 뿌리 표면과 그 주변 토양(근권 토양)으로 구성되며, 뿌리에서 분비되는 물질과 미생물이 집중적으로 존재하는 공간.
  • ❹ 엽권 : 엽면 및 엽면 근처 미생물의 공급원, 방산 공간이 되는 부분.
자연 상태에서 대부분의 미생물은 식물에 병을 일으키지 않고, 뿌리 주변(근권)이나 잎 표면(엽권)에서 공생 또는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병원균에 대한 식물의 다양한 방어기전
먼저 종 특이적 저항성Nonhost Resistance은 한 식물종 전체가 특정 병원균에 감염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방어다. 병원균은 세포벽이나 표피, 대사 환경 등 식물의 기본적인 생리적 장벽을 뚫지 못해 감염이 초기 단계에서 막힌다. 예를 들어 밀 녹병균은 보리나 벼에는 감염하지 못한다.

다음으로 계통 비특이적 저항성Race-nonspecific Resistance은 한 식물종 안에서 여러 병원균 계통에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저항성이다. 여러 유전자의 작용으로 병의 진행을 늦추거나 증상을 완화하며, 완전한 면역은 아니지만 오래 지속되고 환경 변화에도 비교적 안정적이다. 대표적인 예로 다양한 병원균에 존재하는 공통 분자 패턴을 인식하는 패턴유발면역Pattern Triggered Immunity이 있다.

병원균들은 패턴유발면역을 극복하기 위해 이펙터Effector라는 물질을 식물에 주입하며, 병원균의 이펙터가 식물의 저항성 유전자R gene에 의해 인식될 때 계통 특이적 저항성Race-specific Resistance이 나타난다. 이때 이펙터유발면역Effector Triggered Immunity이 활성화돼 감염부위 세포가 스스로 죽는 과민반응HR을 일으켜 병원균의 확산을 막는다.
식물병 삼각형 이론과 이상기후의 영향
식물병리학에는 병 발생의 세 가지 핵심 요인, 즉 기주식물, 병원균, 환경이 상호작용하는 ‘식물병 삼각형Disease Triangle’ 이론이 있다. 병원균과 감수성 기주가 존재하더라도, 병이 발생하기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실제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는 식물이 생육하기 좋은 최적 조건에서 수행되었기 때문에, 고온·고습·홍수 등 비최적 환경이 식물–미생물 상호작용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특히 고온·고습은 식물의 계통 비특이적 및 특이적 저항성에 필수적인 요소, 예를 들어 방어 호르몬 생합성과 이펙터 수용체 복합체 형성 등을 억제하고, 반대로 병원균의 병원성은 강화한다. 이로 인해 평소에는 억제되어 있던 기회감염성 병원균Opportunistic Pathogen이 쉽게 감염을 일으킨다. 또한 이상기후는 토양과 잎 표면의 미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특히 유익균의 활성을 떨어뜨려 병 억제력이 약화된다.
  • ❺ 감수성 : 식물이 어떤 병원체에 감염됐을 때 병에 걸리기 쉬운 성질.
  • ❻ 기주 : 기생생물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식물.
미래의 식물보호 전략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작물들은 지역 기후 조건에 맞추어 품종별로 최적화된 재배 기술이 확립돼 있어 비교적 예측 가능한 농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상기후는 이러한 체계를 무너뜨리고 기존 품종이 적응하지 못하는 새로운 기후 환경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농업 현장에서는 새로운 기후 조건에 적응할 수 있는 신품종 개발과 재배 전략의 재정립이 시급하다.

필자는 이러한 비최적 환경(고온·고습 등)에서 기주식물의 면역체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식물병리학적·분자생물학적 수준에서 규명하고, 이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탐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식물의 방어 전략은 다각도로 구축되어 있으며, 자연에서 식물은 이들 전략 사이의 균형을 통해 미생물과 성공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전략이 비최적 환경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억제된 면역반응 기전들이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예를 들어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는 최적 온도(21~23℃)보다 약 7℃ 높은 28~30℃ 환경에서 면역 호르몬인 살리실산SA의 생합성이 급격히 감소한다. 그러나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면 이러한 억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래의 연구는 이상기후가 식물 면역 시스템에 미치는 다양한 변화를 정밀하게 규명하고, 이를 복원하거나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원리를 탐구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는 비최적 환경에서의 식물–미생물–환경 상호작용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미래형 식물보호 전략을 설계하기 위한 과학적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비최적 환경에서도 면역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개발된 신품종 작물은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량안보를 위한 중요한 과학적 돌파구가 될 것이다.
야생형Col-0과 전사인자 CBP60g 과발현체의 Pseudomonas Syringae DC3000 감염 병징.
야생형 식물은 고온에서 증가된 병징을 나타내지만, CBP60g 전사인자 과발현을 통해 살리실산을 생합성할 수 있는 형질전환 식물은 고온에서도 향상된 저항성을 나타낸다. 이 연구는 고온의 기후변화 속에서도 면역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신품종 작물 개발의 중요한 과학적 원리를 제공한다.
김종흠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교수
연세대학교에서 학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와 듀크대학교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등에서 연구 경험을 쌓았다.
현재 포항공과대학교 생명과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식물-미생물환경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으며 세부 연구 분야는 식물병리학으로,
이상기후가 식물의 면역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분자생물학적 수준에서 규명하는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호 PDF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