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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공학자의 시선
까치로부터 배우다
이상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뉴바이올로지학과 교수

겨울이 지나 낮이 길어질 무렵부터 까치를 연구하는 우리는 한 해 연구 채비를 시작한다. 까치는 다른 텃새에 비해 번식이 빠른 편이라 겨울 동안 정성 들여 둥지를 짓고 빠르면 2월 말부터 산란한다. 까치의 산란부터 새끼가 둥지를 떠난 뒤 부모 곁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번식의 전 과정을 모니터하는 우리에게는 까치의 번식기인 3월부터 6월 중순까지가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사다리차를 타고 둥지에 올라 까치가 낳은 알 수를 세고, 새끼 수를 세고, 새끼의 성장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꽃샘추위가 와도 두꺼운 잠바를 입고 사다리차를 타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 구경도 사다리차 위에서 한다.

왜 까치를 연구하는가
만개한 벚꽃 사이로 사다리차 바구니를 타고 까치 둥지에 접근하고 있다.
까치는 도시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새다. 개체수가 가장 많은 종은 아니지만 같은 참새목 조류 중에는 몸집이 비교적 큰 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전통적으로 까치를 길조로 여긴 탓인지 사람들은 도시 주변에 까치가 살고 있음을 잘 인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동물 관련 TV 프로그램에서도 까치 새끼를 데려다 정성껏 돌본 사람들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이처럼 까치는 우리 주변에 가까이 사는 새로 자리매김했다.

신기한 것은 까치가 야생조류임에도 산등성이와 같은 자연환경보다 도시환경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까치는 탁 트인 공간과 이어지는 산 가장자리에서 주로 발견되는 종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까마귀과에 속하지만 숲 안쪽을 선호하는 어치나 탁 트인 공간을 좋아하는 까마귀와 사뭇 다르다. 이러한 공간을 선호하다 보니 사람들이 살기 위해 나무를 베고 집을 지으면서 생기는 산 가장자리 같은 공간이 자연히 매력적이었을 것이고, 또 사람과 가까운 곳에 살면 포식자의 위험은 줄어들고 먹을거리가 많아지므로 사람과 가까운 환경에서 살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오늘날 모든 것이 인간 생활의 편의를 위해 조성된 도시는 야생조류인 까치가 살기에 그리 녹록한 환경은 아니다. 지능이 높고 적응력이 뛰어나 환경 변화에도 잘 대처할 수 있는 까치에게 녹록지 않은 환경이라면, 까치만큼 지능과 적응력이 높지 않은 다른 야생조류에게는 더 살기 어려운 환경일 것이다. 이에 도시환경에서 까치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의 삶(이를 학술적 용어로 하면 ‘생태’가 될 것이다)을 연구하는 것은 비단 까치뿐 아니라 생활 방식이 유사한 다른 야생조류가 도시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가늠하는 데에도 중요한 일이다.
까치는 잘 살고 있는가
우리 연구진은 1998년부터 까치의 번식 생태를 조사하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한 종의 번식을 20년이 넘도록 모니터한 예가 거의 없지만, 해외에는 수십 년이 넘는 장기 생태 모니터링 프로젝트의 예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해 번식기 동안 추우나 더우나 사다리차를 타며 얻은 자료가 ‘올해의 까치 번식성공도는 평균 알 6.13개, 새끼 3.5마리’라는 한 줄로 요약될 때의 그 허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 해 한 해 자료를 차곡차곡 쌓는다는 사명감으로,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단기간의 연구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연구를 진행해왔다. 처음 5~7년간은 이런 방식으로 어떤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고 우리 노력의 결실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20년 넘는 자료가 축적되자 까치의 번식이 환경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속속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까치의 번식에 도시화와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도시화는 전 세계적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도시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숲이 없어지고 건물이 들어서는 도시화 그 자체로도 야생동물에게 큰 환경 변화일 수 있겠지만, 현재의 상황은 도시화와 기후변화가 동시에 야생동물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문제이다. 기후변화라고 하면 온난화만 떠올리기 쉽지만, 온난화와 함께 이상기후도 점점 더 자주, 더 극심하게 발생한다. 극심한 이상기후가 도시화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까치에게 큰 타격을 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축적된 자료를 분석해보니 까치의 번식성공도도 바로 이런 양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시환경에서 사는 까치가 자연환경에 가까운 지역에 사는 까치에 비해 극심한 이상기후가 발생할 경우 산란도 지연되고 더 적은 새끼를 길러내는 등 더 큰 타격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까치가 이렇다면 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참새, 박새 등의 야생조류도 비슷한 영향을 받을 것이며, 이들이 수명이 짧고 적응력도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까치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민이 공감하는 연구, 시민과 함께하는 연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까치의 생태 변화는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어느 대학 연구실 한쪽에서 실험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인 것이다. 이에 우리는 연구 과정을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의 삶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시민들이라면 우리 연구의 중요성을 공감해줄 것이고, 더불어 시민들이 우리 주변의 야생동물에 관심을 갖게 되고 나아가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 도시의 생물다양성을 모니터할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보다 많은 종의 야생동물이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도시환경을 만드는 데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요즘은 시민참여 과학이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대다수의 시민참여 과학 프로그램은 많은 시민이 참여해 수집하는 자료의 양을 늘이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자료의 양이 많은 것은 중요하다. 연구자들이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여러 지역의 지역 주민이 집 주변에서 자료를 모으는 것처럼 용이하게 자료를 다량으로 얻는 것은 어렵다. 이런 면에서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여 넓은 지역에서 비교적 단시간에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시민참여 과학이 갖는 매력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이 단순히 자료를 얻는 데에 그치지 않고 전체 연구에 참여하면서 조류 생태에 대한 기본 지식뿐 아니라 환경조건을 정량화하고 새의 번식과의 관련성을 찾는 과정을 모두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시민이 연구에 공감하고 동참함으로써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다 보니 많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쌓이고 쌓이면 시민 ‘참여’가 아닌 시민이 주축이 되는 도시 조류 생태 모니터링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갓 부화한 까치 새끼의 모습
연구자가 새끼를 관찰하는 동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고 있는 까치 부모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서의 과학, 세상을 사는 방식으로서의 생태학
가끔 학생들이 어쩌다 동물을 연구하게 되었냐고 물을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그저 동물이 좋고 신기하고 궁금해서였다. 고등학교 때 집에 같이 살던 강아지가 너무 사람 같아서, 강아지가 사람과 같이 살다 보니 사람 같아진 건지, 아니면 원래 사람과 강아지는 비슷한 구석이 많았던 것인지 알고 싶었다. 어찌 보면 사소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과학을 배우고 생태학을 연구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대학생 때는 과학을 공부하며 근거 없는 믿음을 의심하는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배웠다면, 생태학을 연구하면서는 세상을 사는 방식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만을 위한 공간인 도시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도 오랫동안 공존할 수 있으려면 내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생태학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우리 주변의 생태계를 연구하고, 생태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원인을 찾고 그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 나의 소임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 다른 생명체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까치로부터 배운다.
이상임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뉴바이올로지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까치의 생태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그 이후 까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 교수가 청춘을 바친 까치 생태 연구는 2028년이면 30년이 된다. 현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뉴바이올로지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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