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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Film&Tech
스크린 속 인간형 로봇들
이경원 과학 칼럼니스트

SF 작품의 역사는 그야말로 인간형 로봇을 소재로 한 작품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지만 때때로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주던 영화 속 그 수많은 로봇. 그런 로봇들을 다룬 세 작품을 엄선해보았다.

〈이브의 시간〉
로봇은 인간의 종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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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시간>
포스터.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외모를 지닌 로봇 ‘안드로이드’가 실용화된 미래의 일본. 고등학생 리쿠오(후쿠야마 준 분)는 자기 집 가정부 안드로이드 사미(다나카 리에 분)가 ‘이브의 시간’이라는 카페를 몰래 드나든다는 것을 알고 친구와 함께 ‘이브의 시간’을 찾아가 본다.

리쿠오는 그 가게에서 다양한 로봇을 보게 된다. 상대를 인간으로 착각하고 사랑에 빠진 로봇 커플, 어린아이의 양육을 돕는 할아버지 로봇, 주인에게 버려진 로봇 등이 나온다. 사미는 이 가게에서 주인 리쿠오를 위해 더 맛있는 커피 만드는 법을 자발적으로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에 수렴하는 로봇을 혐오하던 정부 내의 보수파는 이 가게를 단속하려고 하는데….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인간형 로봇의 대중화 초기를 예견한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로봇보다 더 문제 있는 존재들로 그려진다. 인간은 로봇의 역할을 인간의 종에만 한정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친구 또는 그 이상으로 승격시킬 것인가를 놓고 의견 충돌을 벌이고 적개심을 표출한다. 정작 로봇들은 인간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원하는데도 말이다. 또한 첨단기술에 대한 일본의 관점을 엿보고 싶다면 볼 만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아이보, 페퍼 등의 로봇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쏟았던 그들 아닌가.
〈디멘션 W〉
인간의 (멸시받는) 친구가 된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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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멘션 W> 포스터.
일본 만화가 이와하라 유지의 동명 작품을 극화한 애니메이션이다. 배경은 서기 2072년의 미래. 새로 발견된 W 차원은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반영구적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이 차원에서 에너지를 무단 횡령해 쓰는 사람들도 생긴다.

W 차원 에너지를 전 세계에 독점 배포하던 기업 뉴 테슬라 에너지사는 사립 탐정 마부치 쿄마(오노 다이스케 분)를 고용해 에너지 횡령범들을 단속한다. 홀로 일하던 쿄마 앞에 어느 날 우연히 나타나 함께하게 된 인간형 로봇 유리자키 미라(우에다 레이나 분). 평범한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능력으로 쿄마를 도와주지만, 쿄마는 그런 고마운 미라에게 늘 ‘고물’이라 욕하며 차갑게 대한다. 그 이유는 둘의 과거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 때문이다. 미라는 희귀병을 앓던 쿄마의 부인 아즈마야 미야비(오쿠타니 카에데 분)의 뇌를 이식하기 위해, 미야비의 몸과 똑같이 만든 의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미야비는 이식 수술을 받아보기도 전에 악당 하루카 시마이어(카지 유키 분)의 손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쿄마는 아내와 같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다른 인격을 지니고 있는 미라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둘은 결국 어떻게 되냐고? 궁금하면 작품을 보시라!

이 작품은 인간과 로봇의 관계뿐 아니라 여러 이론물리학 주제에 대한 작가의 시각도 돋보인다.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E=mc²), 차원론, (다중)우주론, 엔트로피 증가로 인한 우주의 열 죽음 등의 개념이 애니메이션의 문법에 맞게 편곡되어 소개된다. 특히 하루카 시마이어와의 싸움은 유명한 SF 영화 <인터스텔라>를 연상시킬 정도다.
〈아르마 짱은 가족이 되고 싶어〉
사람들을 이어주는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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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 짱은 가족이 되고 싶어> 포스터.
일본 만화가 나나테루의 작품 <소녀형 병기는 가족이 되고 싶어>를 극화한 애니메이션. 9월부터 일본 현지 방영이 시작되는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두 천재 과학자 카미사토 엔지(스즈키 료타 분)와 요바네 스즈메(이치미치 마오 분)는 힘을 합쳐 소녀형 전투 로봇 아르마(츠키시로 히카 분)를 개발해낸다. 뛰어난 성능에 만족스러워하던 두 과학자. 하지만 아르마가 엔지와 스즈메를 갑자기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기 시작하자 당혹스러워한다. 아르마는 “나를 낳아주신 남녀를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라며 두 과학자와 함께 가족처럼 살아간다. 서로에게 연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던 두 과학자. 자신들이 만든 로봇을 딸처럼 키우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알아가고 인정하게 된다.

다정한 SF 가족 코미디를 지향하는 이 작품. 그 이면에는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충분히 성숙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몸만 키우기 일쑤인 현대 문명에 대한 고발, 그리고 그렇게 미성숙한 어른들이 일으키는 문제들을 첨단기술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담겨 있다. 인간은 동류 인간뿐 아니라 로봇에게도 정을 줄 수 있는 생물이다. 또한 이미 로봇들이 치매나 자폐증 등의 정신질환 치료에 활용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해주는 인간형 로봇에 대한 새로운 기대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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