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열기
Changing Tomorrow>똑소리단이 보는 산업기술 R&D
내 일터에는 왜
R&D 기술이 없을까?
김형우 똑소리단
“쏟아지는 혁신, 외면받는 R&D 기술 – 그 간극을 짚다”

요즘 산업기술 R&D는 클라우드, AI, 데이터 같은 용어들로 가득합니다. 산업계와 R&D 기관에서는 이처럼 급변하는 기술 환경을 기회로 삼아 다양한 혁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정부의 R&D 예산 투자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실무 현장에서 느끼는 거리감은 오히려 크게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저는 금융 IT 시스템 구축 분야에서 다양한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기술 트렌드를 접했지만 R&D 성과가 현장에 들어오는 일은 드물었고, 들어오더라도 기대에 비해 아쉬운 결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 년 전 비대면 개인 금융 시스템을 구축하는 프로젝트에서, 신분증 진위 확인을 위한 이미지 인식 솔루션이 필요했습니다. 솔루션 제조사는 한 연구 기관에 기술료를 지불하고 신분증 인식 OCR 모듈을 이전받아 적용했지만, 최신 신분증은 홀로그램 등 위·변조 방지 요소가 적용돼 인식률이 저조했습니다. 제조사는 연구 기관에 새로 나온 신분증에 대한 성능 개선을 요청했지만 후속 지원은 어려운 상황이었고, 일정 압박으로 인해 결국 다른 상용 모듈을 구매해 교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좋은 기술도 현장 적용은 또 다른 도전입니다

정부 주도의 산업기술 R&D 과제 발표와 문서는 멋져 보이고, 실제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실제 프로젝트 단계에서 검토해보면 기술을 바로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금융 시스템은 보안, 안정성, 규제 등으로 인해 환경이 복잡하고 민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R&D 결과물은 이런 제약을 고려하지 못했거나, 실전 적용을 위한 중간 단계가 잘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 책임이 따르는 프로젝트에서는 신기술을 적용하려다 일정 지연이나 장애가 발생하면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대부분 검증된 상용 솔루션이나 레퍼런스가 있는 기술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 결과 새로운 R&D 기술이 나와도 현장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효성 있는 정책, 현장의 목소리에서 시작됩니다

기술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실제 현장에서 기술을 활용하는 실무자의 의견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합니다. 실무자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시스템을 설계·구축·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기술의 이론적 가치와 현장에서 실제 적용 사이의 차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술의 혁신성보다 현장의 적합성과 안정성에 더 민감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기술은 만드는 것보다 잘 쓰이게 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의 ‘마스크 알리미’ 사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당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심화되자, 정부는 전국 약국의 마스크 재고 정보를 공개하고 ‘마스크 알리미’ 앱 개발을 위해 공공데이터 API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출시 초기에는 “실제 재고와 앱 표시가 다르다”, “약국 위치가 부정확하다”는 등 다양한 현장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정부와 IT 개발사는 약사회 및 약국 종사자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API 갱신 주기를 조정하고, 일시적 판매 중단이나 재고 상태를 직접 표시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했습니다. 이처럼 현장의 목소리와 피드백이 정책 및 기술 서비스에 신속히 반영되어 사회적 혼란을 줄이고 약국 현장의 업무 부담을 완화하는 등 좋은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현장 적용을 위한 실질적인 도입 방안이 필요합니다

산업기술 R&D 정책이 현장에 닿기 위해서는 실증 기반의 실질적인 도입 기회가 필요합니다. 기술의 최초 적용을 위한 시범 사업, 파일럿 프로젝트, 경량화된 테스트 환경 등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연구 성과가 실제 현장에서 검증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R&D 과제에 실증 사업을 포함하는 사례도 늘고 있지만, 실증을 위한 실증보다는 실제 시스템 구축에 R&D 기술이 적용되고 대국민 서비스에 활용되는 사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런 실증의 접점이 부족하다면 R&D 결과는 보고서에만 머무르게 되고, 현장은 여전히 검증된 상용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이 일터로 들어오는 정책을 기대합니다

정부의 산업기술 R&D 정책은 이제 기술의 ‘생산’에서 ‘소비’로, ‘개발’에서 ‘적용’으로 중심이 옮겨가야 합니다. 연구실에서 탄생한 기술이 현장의 일터에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 그것이 진짜 산업 현장이 발전하고 기술 경쟁력을 만드는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똑소리단이 보는 산업기술 R&D는 <테크 포커스>의 독자참여단인 똑소리단이 직접 참여하는 칼럼입니다.

s3_1_1.png
s3_1_2.png
김형우 IBK시스템 부장
IBK시스템(기업은행 IT 자회사)에 재직 중이며, 시스템 아키텍처 설계, 연계 미들웨어 개발, 차세대 정보시스템 구축 및 U2LUnix-to-Linux 전환 프로젝트 PM 역할 등을 수행해왔다.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번 호 PDF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