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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슬기로운 기술 생활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을 만드는 핵심
‘전력 반도체’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올해 정부는 ‘전력 반도체’를 미래산업을 이끌어갈 핵심 ‘키’로 설정했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되면서 반도체 경쟁의 무게중심이 ‘연산 성능’에서 ‘전력효율과 내구성’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AI 데이터센터와 전기차가 엄청난 전기를 사용하는 요즘 시대에 전력을 최대한 덜 쓰고 낭비 없이 전달하는 기술이 바로 전력 반도체입니다.
우리 삶의 에너지를 똑똑하게 관리하는 전력 반도체의 세계로 함께 떠나볼까요?

전력 반도체의 원리, 스위칭과 컨버팅
반도체 하면 어떤 기술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요. 아마도 정보를 저장하거나 복잡한 계산을 하는 컴퓨터의 두뇌 작용이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가 매일 쓰는 전자제품 안에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대신 전기를 직접 제어하는 아주 특별한 반도체가 있습니다. 바로 ‘전력 반도체Power Semiconductor’입니다.

전력 반도체는 전기를 기기에 맞게 바꾸고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전기의 ‘교통정리 담당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부터 커다란 전기차, 밤낮없이 돌아가는 데이터센터에 이르기까지 전기가 흐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전력 반도체가 활약하고 있습니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우리 집 콘센트까지 오지만, 그 전기를 그대로 우리가 사용하는 기기에 바로 쓰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벽면 콘센트에서 나오는 220V의 높은 전압을 스마트폰이 쓸 수 있는 5V의 낮은 전압으로 바꾸거나, 전기차 배터리에 저장된 직류DC 전기를 모터를 돌리는 데 필요한 교류AC 전기로 바꿔줘야 합니다. 이것이 전력 반도체가 하는 가장 대표적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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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 콘센트에서 나오는 220V의 전기는 그대로 가전제품에 쓰이지 않는다.
전력 반도체는 이 전기가 기기에 무리를 주지 않도록 적절한 전압으로 바꾸고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물의 양을 조절하는 수도꼭지를 떠올려봅시다. 수도관(전선)을 통해 물(전기)이 세게 쏟아질 때, 전력 반도체가 수도꼭지 역할을 해서 상황에 맞게 물(전압)의 세기를 높이거나 낮추고 물의 방향(교류에서 직류)을 바꾸며 딱 필요한 만큼만 흐르게 조절해주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력 반도체는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꽉 잡아 에너지 효율을 높여줍니다.

전력 반도체의 핵심 원리는 ‘스위칭Switching’과 ‘변환Converting’에 있습니다. 스위칭은 눈 깜빡할 새보다 빠른 속도로 전기를 켰다 껐다On/Off 반복하며 전류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1초에 1000번 이상 스위칭 동작을 하며 필요한 양만큼의 에너지만 보냅니다.

변환은 전압, 전류, 직류·교류 등 전기의 형태를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전기차 배터리의 높은 전압을 차량 내 디스플레이나 에어컨이 사용할 수 있는 적정 전압으로 바꿔주는 식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숙제는 바로 ‘열’입니다. 전기를 바꿀 때마다 에너지 일부가 열로 변해 사라지곤 하는데, 전력 반도체의 성능이 좋을수록 이렇게 버려지는 열이 줄어듭니다. 열 발생이 줄어들면 배터리를 훨씬 오래 쓸 수 있고, 스위칭 동작이 빠를수록 전기신호를 더 정밀하고 빠르게 다룰 수 있어 전력 변환효율이 더욱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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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전기차 산업의 급성장으로 전력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차세대 배터리와 고성능 전력 반도체의 시너지효과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전기를 부드럽게 다스리는 MOSFET과 IG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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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언의 전력 반도체 소자 라인업. 왼쪽의 SiC MOSFET은 실리콘 대비 열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이며, 오른쪽의 X3 Lite 드라이버는 MOSFET과 IGBT에 대한 통합 구동 능력을 바탕으로 시스템 설계의 복잡도를 낮추고 전력효율을 높인다.
이렇게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기의 흐름을 직접 조절하는 핵심 부품들이 필요합니다. 그중에서도 현대 전력 제어의 두 주인공은 바로 ‘모스펫MOSFET(금속·산화물·반도체 전계 효과 트랜지스터)’과 ‘아이지비티IGBT(절연 게이트 양극성 트랜지스터)’입니다. 예전에는 트랜지스터가 전류를 이용해 전류를 조절했다면, MOSFET은 ‘전압’의 힘만으로 전류를 아주 세밀하게 조절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MOSFET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입니다. 수십 나노초ns라는 찰나의 순간에 전기를 켰다 껐다 할 수 있어, 반응 속도가 아주 중요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같은 기기에 필수적으로 쓰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실리콘Si으로 만든 MOSFET은 너무 높은 전압이나 큰 전류가 흐르면 구조적으로 견디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IGBT입니다. IGBT는 MOSFET의 ‘부드럽고 쉬운 제어’라는 장점과 일반 트랜지스터BJT의 ‘강력한 전류 전달 능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소자입니다. 수천 볼트V의 고전압과 수천 암페어A라는 엄청난 양의 전류도 거침없이 다룰 수 있어 전기차 모터나 KTX 같은 고속열차, 공장의 대형 모터 등의 전력으로 변환하는 데 필수적으로 사용됩니다. 실제로 테슬라 모델3 한 대에는 24개의 IGBT가 들어가, 배터리의 직류 전기를 모터 돌리는 교류로 바꾸는 중요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전기를 골고루 나눠주는 지휘자, PMIC
MOSFET과 IGBT 소자들이 전기를 바꾸고 버티는 역할을 한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전기를 기기 안에서 구석구석 배달해주는 지휘자도 꼭 필요합니다. ‘전력 관리 집적회로PMIC’라고 부르는 전용 칩이 그것입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같은 기기 안에는 두뇌 역할을 하는 프로세서, 화면을 밝히는 디스플레이, 소리를 내는 스피커까지 정말 많은 부품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부품들이 원하는 전압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배터리에서 나오는 전기는 하나인데, 어떤 부품은 낮은 전압을 원하고 어떤 부품은 더 높은 전압을 원합니다. 그래서 이를 맞춤형으로 변환해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때 PMIC가 중간에서 딱 붙어 배터리 전력을 받아 각 부품이 원하는 최적의 전압으로 바꿔 전달해줍니다. 예전에는 이 일을 여러 개의 칩이 나눠 했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하나의 작은 칩이 이 모든 일을 해냅니다. 덕분에 우리 손안의 기기들이 점점 얇아지면서도 전기를 알뜰하게 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SiC와 GaN, 전기차 시대를 여는 새로운 소재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해온 실리콘 웨이퍼 기반의 MOSFET과 IGBT는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능력이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도체의 주인공은 ‘실리콘’이었습니다. 실리콘은 만들기 쉬워 기술적 완성도도 높고 가격도 싸서 여전히 사용 범위가 넓습니다. 하지만 실리콘은 뜨거운 열에 약하고, 전압이 너무 높아지면 타버리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실리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탄소와 규소를 결합한 ‘탄화규소SiC’, 갈륨과 질소를 결합한 ‘질화갈륨GaN’ 같은 새로운 소재를 찾아냈습니다. 산화갈륨Ga2O3 같은 소재도 뒤를 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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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화규소SiC 전력 반도체의 기반이 되는 웨이퍼의 품질을 검사하는 모습이다. 실리콘 대비 10배 높은 전압을 견뎌야 하는 소재 특성상, 엄격한 공정관리를 통해 전기차와 에너지 산업의 안전성을 확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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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대비 10배 이상 빠른 스위칭 속도를 구현한 질화갈륨GaN 기반의 전력 반도체다. 고성능 충전기와 데이터센터 서버 등 고효율이 필요한 분야에 최적화된 성능을 제공한다.
반도체 산업이 SiC와 GaN에 기대하는 점 중 하나는 ‘적은 전력손실’입니다. 이 두 소재가 실리콘에 비해 전력손실이 적은 비결은 ‘와이드 밴드갭Wide Band-Gap’이라는 특별한 성질 덕분입니다. 밴드갭은 전자가 넘나드는 에너지 장벽인데, 밴드갭이 넓을수록 높은 전압과 뜨거운 온도를 잘 견뎌냅니다. 실리콘은 밴드갭이 1.2eV(에너지볼트)로 좁아서 열이 쉽게 나고 전압이 높으면 무너집니다. 반면 SiC는 3.3eV, GaN은 3.4eV로 가장 넓습니다. 덕분에 전기를 공급할 때 열로 새나가는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여줍니다.

밴드갭이 좁으면 자유전자 생성이 많아져 전자의 이동량이 많아집니다. 그럴 경우 격자와 충돌이 잦아지면서 열에너지가 생깁니다. 만약 100W의 전력을 공급했는데 30W가 열로 손실됐다면 70%의 효율만 얻게 됩니다. 그렇다고 밴드가 너무 넓으면(4eV 이상) 전자가 장벽(전도대)까지 도달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0.1~4eV는 반도체, 그 이상은 부도체로 봅니다.

현재 반도체 시장의 약 95%는 실리콘을 재료로 씁니다. 하지만 실리콘은 고온의 환경에서 안정성과 내구성이 떨어져 온도가 150℃ 이상 올라가면 반도체 성질을 잃어버립니다. 전력 변환효율도 92~95% 수준입니다. 나머지 5~8%는 열로 빠져나갑니다. 스마트폰 충전기에서는 이 정도 수준이 별 문제가 안 되지만, 전기차나 데이터센터처럼 전력 소비가 큰 곳에서는 엄청난 열 손실입니다.

SiC는 특히 같은 두께에서 고전압을 견디는 능력이 실리콘보다 10배나 높습니다. 이는 높은 전압을 걸어도 반도체에 문제가 생기지 않고 적절한 동작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열전도율도 실리콘보다 3.5배나 뛰어나서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SiC는 고전압이 흐르는 환경, 즉 전기차 등에 최적입니다. 실제로 테슬라가 전기차에 SiC 반도체를 사용한 결과, 실리콘에 비해 에너지 손실을 6%나 더 줄일 수 있었습니다. 배터리는 똑같은데 주행거리가 수십 킬로미터나 늘어난 셈입니다.

현재 전력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SiC 반도체입니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를 SiC로 바꾸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결론적으로 전력효율이 약 5~10% 향상돼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그만큼 늘어나고, 또 열에 강하기 때문에 무거운 냉각장치를 줄일 수 있어 차량 무게가 가벼워지고 내부 공간을 더 넓게 확보할 수 있습니다. ‘더 멀리 가고, 더 빨리 충전되는’ 전기차의 꿈이 SiC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성능이 워낙 뛰어나 전기차 시장에서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반면에 GaN은 전기를 켰다 껐다 하는 스위칭 속도가 실리콘보다 10배 이상 빠르다는 것이 최대 장점입니다.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같은 성능을 내면서도 부품의 크기를 3분의 1로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요즘 쓰는 손가락 두 개만 한 아주 작은 고속 충전기가 가능한 이유도 바로 GaN 덕분입니다. 또 전 세계 데이터센터에서 GaN을 사용하면 원자력발전소 한 기가 일 년 동안 만드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을 정도로 전력 변환효율이 좋습니다. 따라서 산업계에서 GaN에 대한 기대는 매우 높습니다.
전력 반도체 소자의 물질별 사용 영역
가로축은 작동 속도(주파수)를, 세로축은 다루는 힘(전력량)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실리콘Si 소재에 비해 SiC(탄화규소)는 전기차와 철도 등 고전력 영역(위쪽)에 특화되어 있으며, GaN(질화갈륨)은 초고성능 충전기와 서버 등 고속 스위칭 영역(오른쪽)에서 압도적인 효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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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반도체, 다이아몬드가 그리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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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의 견고한 결합을 통해 최고 수준의 경도와 열전도율을 자랑한다. 아직은 높은 공정 비용이 숙제지만, 기술적 완성이 이뤄진다면 전력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전망이다.
이처럼 SiC와 GaN은 현재 전력 반도체 시장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이상의 성능을 보여줄 ‘끝판왕 소재’를 찾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가 보석으로 알고 있는 ‘다이아몬드’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사실 가장 완벽한 반도체 재료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물질 중 가장 단단합니다. 광물의 경도를 나타내는 척도인 모스 경도는 10점 만점에 10점입니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로만 이뤄져 있고 매우 견고한 정사면체 구조로 결합돼 있어, 다른 광물을 긁는 능력(긁힘 저항)이 최고 수준입니다. 그래서 절단, 드릴링 또는 연마재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SiC보다 전압을 견디는 힘이 30배나 강하고, 열전도율은 구리보다 5배나 뛰어납니다. 만약 이 반도체를 쓰면 뜨거운 열을 식히는 냉각장치가 아예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아직은 인공 다이아몬드를 크게 만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완성된다면 우주선이나 심해 탐사선처럼 아주 극한 환경에서도 끄떡없는 ‘꿈의 반도체’가 될 것입니다.

전력 반도체는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아주 정밀하고 소중하게 다스리는 숨은 공신입니다. 실리콘에서 시작해 화합물을 거쳐 다이아몬드로 향하는 이 여정은, 결국 우리가 에너지를 덜 쓰면서도 더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멋진 기술의 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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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청소년 과학 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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