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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공학자의 시선
가축분뇨에서 청정연료로,
버려진 것들의 두 번째 삶
이상민 충남대학교 생물환경화학과 교수

매일 아침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 그 커피 찌꺼기가 축산업의 골칫거리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연간 35만 톤 넘게 발생하는 커피박과 5200만 톤에 달하는 가축분뇨가 만나 청정연료로 변신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직면한 환경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합니다.

  • ❶ 커피박 : 커피를 만들고 남은 커피 원두 찌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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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 속 불편한 진실
회식이나 가족 모임에서 빠질 수 없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현대 사회에서 식습관의 변화로 육류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우리 일상은 이제 축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숨기고 싶은 그림자가 있습니다. 바로 가축분뇨입니다. 2023년 국내에서 발생한 가축분뇨는 연간 약 5200만 톤으로, 이는 500ml 페트병으로 환산하면 수천억 개에 달하는 엄청난 양입니다. 이 가운데 88%가 퇴비로 처리되고 있으나, 과잉 살포와 부적절한 처리로 토양의 질소·인 축적이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가축분뇨로 인한 악취 민원이 전체 악취 민원의 35%를 차지하고, 지하수 오염과 녹조 발생 같은 환경문제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바로 가축분뇨 처리에 있습니다. 가축분뇨를 퇴비로만 쓸 것이 아니라 혐기소화 공정을 거쳐 바이오가스로 전환한다면 도시가스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체 가축분뇨의 42%를 차지하는 우분(소똥)은 깔짚으로 사용되는 톱밥이나 왕겨와 같은 목질계 바이오매스 때문에 기존의 바이오가스 시설로는 처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돈분(돼지똥)과 달리 우분은 에너지화 방법이 제한적이어서, 대부분 퇴비로만 처리됐던 것입니다.

한편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 커피를 내리는 데 사용한 원두의 99.8%는 커피박으로 버려져 연간 약 35만 톤이 발생하며, 이를 처리하는 데도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됩니다. 그런데 커피박의 발열량은 무려 5600kcal/kg으로, 석탄 못지않은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왜 우리는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하면서, 귀한 에너지 자원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을까?”

이 질문이 바로 연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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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버려지던 커피박. 사실 석탄 못지않은 발열량을 가진 에너지 덩어리다.
  • ❷ 혐기소화 : 산소가 없는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으로, 메탄·이산화탄소 등의 바이오가스를 생산한다.
미생물의 힘으로 완성되는 ‘발효에너지’
바이오가스로 전환하기 어려운 우분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고체연료화입니다. 현재 석탄을 대체하는 신재생에너지로서의 고체연료는 주로 우드칩이나 우드펠릿 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고체연료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국내 신재생에너지 안보를 확립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가격 또한 지속적으로 높아져 발전사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분을 고체연료로 활용하는 산업의 수요는 매우 높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도 큰 기술적 장벽이 있는데 바로 건조과정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분은 70% 이상의 수분을 포함하고 있어, 고체연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20% 미만으로 함수율을 낮춰야 합니다. 그러나 산업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열풍 건조나 디스크 건조 같은 물리적인 건조 방식으로는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돼 친환경적인 면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오히려 손해가 되기도 합니다.

이에 충남대학교 연구진은 ‘유용 미생물’과 ‘커피박’이라는 두 가지 열쇠에 주목했습니다. 가축분뇨를 열을 가해서 말리는 것이 아니라, 유용 미생물을 활용해 자체 발열로 빠르게 발효·건조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국내 축분 슬러지에서 발굴한 신규 유용 미생물들은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미생물은 악취의 주원인인 암모니아를 98.5% 이상 제거하며,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 60~80℃의 산화열을 발생시켜 물리적 건조 에너지를 60% 이상 절약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커피박이 ‘부스터’ 역할을 합니다. 발열량이 무려 5600kcal/kg에 달하는 커피박을 우분과 혼합하면 고체연료의 품질이 획기적으로 높아집니다.

기술은 실험실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해당 연구는 전국 최초로 ‘산업융합촉진법에 따른 규제특례’를 승인받았습니다. 기존 가축분뇨법은 가축분뇨 외 다른 물질과의 혼합을 금지했지만, 우리 기술은 농업 부산물을 50% 미만 혼합하여 실증 생산이 허용되었습니다. 이는 기술 개발이 법 제도의 변화까지 이끈 사례로, 진정한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전주김제완주축협 김제자원순환센터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실증 설비가 가동 중이며, 법적 기준(3000kcal/kg)을 충분히 충족하는 고체연료가 대량 생산되고 있습니다. 하루 6톤의 우분이 투입되면 7일 이내 4톤의 고체연료가 펠릿 형태로 완성됩니다. 또한 커피박을 축사 깔개로 활용하면 분뇨와 함께 처리되는 과정에서 축사 내 암모니아 농도를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어, 실제 농가에서 “냄새가 크게 줄어 삶의 질이 달라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환경문제 해결과 동시에 농가 실익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입니다.
  • ❸ 우드칩 : 나무를 잘게 썰어 압축한 목재 폐기물.
  • ❹ 우드펠릿 : 나무를 톱밥 같은 작은 입자로 분쇄, 건조, 압축하여 원기둥의 알갱이 모양으로 가공한 제품.
  • ❺ 함수율 : 어떤 물체가 포함하고 있는 수분 비율.
  • ❻ 슬러지 : 물속 부유물질이 가라앉아 생긴 침전물 또는 진흙처럼 걸쭉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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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5200만 톤 이상 발생하는 가축분뇨를 청정에너지로 만드는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축산업을 실현한다.
기술을 넘어 철학으로
이 연구를 진행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은 ‘버려지는 것들의 재탄생’을 목격하는 것입니다. 처리비용만 연간 수백억 원이 드는 커피박과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여겨지던 가축분뇨가 만나 청정에너지로 거듭나는 모습은 순환 경제의 진정한 의미를 보여줍니다. 저는 생물공학자로서 기술이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철학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분 고체연료화 기술은 단순히 폐기물을 연료로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농촌 지역의 에너지 자립을 가능하게 하고, 축산 농가의 경영을 보다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으로 바꿔주며, 연간 92만 톤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를 가져오는 종합적인 해결책입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어 전국에 보급되면 우리 일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가장 직접적으로는 축산업으로 인한 악취 문제가 크게 개선될 것입니다. 또한 커피전문점이나 식품회사에서 골치 아프던 커피박 처리 문제도 해결되어, 폐기물 처리비용이 연간 200억 원 이상 절약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 나아가 이 기술은 국가적으로 새로운 에너지 생태계를 만들어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국가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지역별 에너지 자립형 도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현재 연구는 발전소에서의 시험 연소를 통해 상용화 가능성을 최종 검증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기술은 우분뿐 아니라 돈분, 음식물쓰레기, 하수 슬러지 등 모든 유기성 폐기물에 적용할 수 있으며, 에너지도 고체연료에 머무르지 않고 합성가스와 바이오수소까지 확장 가능한 종합 신재생에너지 기술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술이 축산 농가부터 발전사, 정부, 지자체까지 전국에 확산되어 축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국가 에너지 자립을 실현하며, 나아가 탄소중립 사회 구현에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작은 기술 하나가 만들어낼 수 있는 거대한 변화의 가능성을 믿으며, 오늘도 연구실에서 미래를 준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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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분뇨와 커피박을 섞어 고체연료를 생산하는 고속 발효 건조장치.
유용 미생물을 활용한 발효 기술로 환경문제 해결과 농가 실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우분 고체연료화 공정 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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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충남대학교 생물환경화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화학부 졸업 후 동 대학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SK이노베이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2023년 충남대 생물환경화학과 교수로 부임해 미생물을 이용한 화학 소재 개발 등 환경미생물학, 대사공학 연구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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