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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History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사
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우리는 어릴 적부터 그렇게 배워왔다. ‘로봇이란 사람과 비슷하게 생긴 기계’라고 말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휴머노이드 로봇은 로봇 개발의 끝판왕에 근접하는 존재다.
그만큼 만들기 어려운 휴머노이드 로봇,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왔을까.

먼저 질문을 던져보자. 사람들은 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고 갖기를 원하는가? 우선 심리적 이유 때문이다. 사람과 비슷한 모습이면 그만큼 친숙함을 느낀다. 인간과 상호작용을 하기도 쉽다.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는 범용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환경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로봇은 노동력 부족 문제 해결 및 생산성 향상에도 바로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어야(2족 보행) 하는데, 이것부터 어렵다. 울퉁불퉁한 지형이나 경사면에서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움직이려면 고도의 균형 제어 기술이 필요하다. 이는 로봇의 무게중심을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제어하는 복잡한 알고리즘과 정교한 센서 및 구동 부품인 액추에이터Actuator 등을 요구한다. 또한 27개의 뼈와 20여 개의 관절로 이루어져 물건을 잡고 누르고 조작하는 등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작업을 수행하는 인간의 손을 모방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근육과 같은 에너지 효율성, 관절과 같은 고성능 액추에이터, 뛰어난 인지 및 판단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산이 있기에 오른다 했던가? 그렇게 어려운 과제이기에 많은 개발자들이 오늘도 더욱 완벽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과학 시대 이전, 로봇에 대한 꿈
과학 시대 이전에도 인간은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상상은 신화와 전설, 민담 속에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간형 존재’로 나타나는데, 이는 오늘날의 로봇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신화 속의 청동 거인 탈로스, 아프로디테 여신의 힘으로 조각상에서 사람으로 둔갑해 자신을 만들어준 미술가 피그말리온과 결혼한 갈라테이아, 히브리 랍비가 만들었다는 진흙 거인 골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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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이미 로봇을 상상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의 손에서 탄생한 ‘기계 기사’는 인간과 닮은 기계를
만들고자 했던 인류의 오랜 꿈을 보여준다.
물론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요즘도 만들기 힘든 휴머노이드 로봇을 그 시대 사람들이 보유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 시대 로봇’들을 다룬 신화와 전설을 보면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을 닮은 기계’를 갖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에 따른 윤리적·철학적 고민을 해온 것도 알 수 있다. 그 같은 고민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왔다. 현대의 전투 로봇과 닮은 탈로스, 반려 로봇과 닮은 갈라테이아, 통제를 벗어난 AI의 위험성을 떠올리게 하는 골렘의 이야기에서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있다.

현대적인 로봇공학이 발전하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이런저런 자동인형을 만들었다. 그들은 주로 왕실이나 귀족을 위한 장난감, 예술품, 혹은 종교적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오늘날의 로봇처럼 복잡한 센서나 인공지능을 갖추진 않았지만, 기계적인 원리를 이용해 인간과 유사한 움직임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로봇의 원시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자동인형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존재해왔다. 당시에도 이미 물, 증기, 또는 추의 무게를 이용해 자동으로 움직이는 인형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기계 기사, 18세기 프랑스 발명가 자크 드 보캉송이 만든 ‘피리 부는 양치기 소년’, ‘오리 인형’ 등의 자동인형, 같은 세기 스위스 시계 기술자 피에르 자케 드로가 만든 ‘글 쓰는 인형’, ‘악기 연주하는 인형’, ‘그림 그리는 인형’ 등, 그 움직임도 실제 인간과 더욱 비슷해졌다. 하지만 현대적인 기준에서 보면 이것들은 결코 로봇이라고 부를 수 없다. 센서도 인공지능도 없으므로 외부 환경을 감지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로봇의 출현은 인공지능과 센서가 발달한 20세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20세기, 현대적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과 발전
통상적으로 사상 최초의 현대적 로봇은 1961년에 등장한 미국의 산업용 로봇 유니메이트Unimate를 꼽는다. 그렇다면 최초의 현대적 휴머노이드 로봇은 무엇일까? 그로부터 10여 년 후인 1973년에 등장한 와봇-1WABOT-1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와봇-1은 일본 와세다대학교 가토 이치로加藤一郎 교수팀이 개발했다. 무엇보다 이 로봇은 2족 보행이 가능했다. 정적 보행이라는 방식으로 한 발을 내딛고 몸의 균형이 안정된 후 다음 발을 내딛는 식이었다. 물론 오늘날의 로봇에 비하면 매우 느리고 불안정했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이었다. 또한 팔과 손을 가지고 있어 물건을 잡고 운반할 수 있었으며, 촉각 센서로 물건의 접촉을 감지할 수 있었다. 외부 환경을 인식하는 눈 역할의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물체 거리와 방향도 측정할 수 있었다. 또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간단한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음성인식 및 합성 기능이 탑재되었다. 즉 동작, 인지, 의사소통이라는 현대 로봇의 3대 핵심 요소를 최초로 휴머노이드 몸체 안에 통합한 사례다. 이는 로봇이 산업 현장에서 여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84년에는 같은 개발팀에 의해 와봇-2도 개발됐다. 와봇-2의 가장 큰 특징은 피아노 연주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와봇-2는 음성 및 시각 센서를 통해 악보를 인식하고, 인식된 음을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에 정확히 입력할 수 있었다. 또한 인간의 명령에 따라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는 로봇이 노동력을 대체하는 존재를 넘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한편 일본 기업 혼다는 1986년부터 E0를 시작으로 E6까지 총 7개의 E 시리즈 모델을 개발, 2족 보행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E6는 자체적으로 균형을 잡고,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장애물을 넘는 등 상당한 수준의 2족 보행 능력을 보여주었다. E 시리즈의 연구 성과와 기술은 이후 개발된 P 시리즈를 거쳐, 2000년에 공개된 아시모ASIMO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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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공히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와봇-1’.
1973년에 등장한 ‘와봇-1’은 현대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대를 열었다.
21세기, 점차 생활 속으로 다가오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기술적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 혁명적인 존재다. 자연스러운 보행과 더불어 뛰기, 계단 오르내리기 등 고도화된 동작을 안정적으로 수행했다. 경사로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공을 차거나, 쟁반을 나르거나, 악수하는 등 섬세한 동작이 가능했다. 아시모는 여러 전시회와 행사에서 대중에게 공개돼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능성을 널리 알렸고, 일본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이에 자극받아 오준호 KAIST 교수팀도 2004년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Hubo를 개발했다. 휴보는 독자개발 기술로 아시모처럼 자연스러운 2족 보행이 가능하다. 특히 휴보는 2015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이 주최한 ‘DARPA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우승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이 대회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착안, 재난 상황에서 인간을 대신해 구조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의 성능을 겨루는 대회다. 휴보는 자동차 운전, 문 열고 들어가기, 밸브 잠그기, 사다리 오르기 등 8가지 미션을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해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우승했다. 이는 재난 구조 로봇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로봇의 유용성에 대한 인식을 높인 사례였다.

이후 휴머노이드 로봇의 보행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했다. 공중제비까지 도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Atlas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기술 발전에 힘입어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에서 개발한 옵티머스Optimus 로봇을 사상 최초의 보급형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완성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수백만 대 규모의 대량생산과 합리적인 가격을 통해 자동차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로봇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로봇 기술은 인간에게 무형의 도움을 주는, 즉 감정 교류를 하는 방향으로도 발전하고 있다. 2014년 소프트뱅크가 선보인 로봇 페퍼Pepper가 좋은 사례다. 페퍼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톤을 분석해 기분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로봇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런 기능을 통해 사용자가 슬퍼 보이면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웃으면 함께 웃을 수 있다. 페퍼는 고객 응대, 정보 제공 및 안내 임무에 투입돼, 사람들과 직접 교류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16년 핸슨로보틱스가 선보인 소피아Sophia는 여기서 더 나아갔다. 인간과 덜 닮은 페퍼와는 달리 소피아는 인간과 매우 유사한 얼굴과 표정 기능을 갖고 있다. 2017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세계 최초로 로봇 시민권을 부여받아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래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어느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가? 우선 물리적 능력의 강화로 더욱 자연스러우면서도 강하고 정밀한 동작이 가능해질 것이다. 지능 역시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자체 판단 및 학습 능력이 발달할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은 상용화와 대중화를 거쳐 삶 곳곳에서 모습을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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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PA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당당히 우승한 우리나라의 휴보.
재난 상황에서 인간을 대신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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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의 감정 교류 가능성을 실험한 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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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로봇 시민권을 부여받은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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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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