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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임무는
극지의 자연을 유지하고 보전하는 것입니다
서원상 극지연구소 기획조정부 부장
김선녀 사진 김기남

국제환경법을 전공한 연구자로 시작해 극지연구소에서 정책·법제 연구, 전략기획, 기획조정부까지 거친 12년의 여정을 통해 과학과 행정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서원상 부장.
그는 기회의 땅, 기회의 바다 극지를 잘 보전하고, 관측하며, 예측하는 것이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고 말한다.
지난한 과정이지만 의미 있다고 믿는 극지 연구를 위해 과학 행정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서원상 부장을 만나본다.

법학 전공자에서 ‘과학 행정가’로 전향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고민과 과정을 거쳐 극지연구소 기획조정부 자리에 오게 되었나요?
전환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저는 국제환경법을 전공했는데요. 처음엔 극지연구소의 국제법·극지정책 분야 연구직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정책 부서에서 근무하다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단 단장을 맡아 예비타당성조사 기획을 담당하면서 산·학·연·관·민의 다양한 니즈와 협력을 위한 소통을 통해 큰 그림 보는 방식을 배웠습니다. 이후 전략기획부를 맡아 정책개발, 연구기획, 연구사업 관리, 연구성과 확산으로 이어지는 소위 ‘전 주기 연구사업 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죠. 예타가 연구자 입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방향이었다면, 전략기획부는 행정가 입장에서 연구자와 소통하는 방향성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해 기획조정부로 자리를 옮겨 극지연구소가 국회, 정부, 지자체, 언론, 민간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국제법 연구자로 입소해 12년 후 행정가가 된 제 이야기입니다.
극지연구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일반적인 해양이나 육지에는 없는, 그리고 극지에만 있는 것이 바로 얼음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켜켜이 쌓여온 얼음이죠. 그 안에 많은 역사가 화학 분자, 액체, 기체, 광물로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극지연구소는 얼음 그리고 얼음이 녹는 과정, 녹은 이후까지 얼음으로부터 파생되는 지구환경 변화를 관측하고, 데이터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극지 현황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 분야 중에 극지 관련 연구에 끌리신 배경도 궁금합니다. 극지에도 실제로 다녀오셨나요?
미지의 공간이 가진 매력 때문이었죠. 무엇보다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 극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존 남극조약 체제가 존재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더 많은 국가들이 이해당사자가 되어 협의에 나설 텐데, 이로 인해 변화할 많은 상황이 곧 무궁무진한 연구 거리가 되죠.

극지 방문은 2023년 가을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에 처음 다녀왔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광활한 얼음 위에 섰을 때 그저 무한히 겸손해지더군요. 제가 타고 왔던 군용기는 물론 인간이 너무 작고 힘없이 느껴졌어요.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서로 의지하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구환경의 ‘쿨링 시스템’으로 불리는 극지가 인간의 인위적 개발로부터 어떤 위협을 받고 있나요? 특히 기후변화의 영향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요?
극지는 지구온난화, 기후변화에 가장 빨리 반응하는 곳이고, 이러한 극지의 환경 변화가 다시 지구환경 시스템을 작동시켜 기후변화를 가속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인위적인 개발 행위는 이미 지구에 심각한 환경 손상과 변화를 초래해왔고, 남극과 북극도 다르지 않습니다. 또한 남극에 가해지는 직접적인 활동들도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극에서 과학자만 활동할 수 있었지만, 현재 다양한 형태의 관광이 남극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북극해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콜드러시’라는 신조어와 함께 항로, 수산, 광물자원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죠. 극지에 대한 인간의 이러한 관심과 활동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극지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져야겠죠.
최근 기후 위기, 기상이변, 해양쓰레기, 생물다양성 감소 등 지구적 환경문제 속에서 극지연구소 전략기획부가 추구하는 정책적 방향성은 무엇입니까?
극지연구소의 역할은 남극과 북극의 결빙 해역, 남극대륙과 북극의 동토, 극지역의 대기와 우주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극지 현장의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지구환경의 과거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이해하고, 다시 현재로부터 미래를 예측해 국민과 인류에게 우리 삶의 터전이 되는 극지의 현황을 알리는 것입니다. 극지연구소가 지향하는 방향성은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 ❶ 동토 : 1년 내내 얼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땅속 깊이까지 얼어 있는 영구 동결층을 가리킨다.
극지 연구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연대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현재 극지 연구 선진국은 어디이며, 이들과의 협력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늦은 1980년대 이후 극지 연구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남극의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과학기지, 북극의 다산과학기지 등 인프라를 통해 세계 각국의 우수 연구진과 교류할 수 있었고, 지금은 어엿한 선도국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일찍부터 극지 연구를 시작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칠레, 중국, 일본 등과 핵심 정보를 주고받거나 공동 연구 등을 통해 다양한 국가와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극지 환경의 남극과 북극은 어느 한 나라의 재력과 기술력으로 탐사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극지에서 살아남으려면 국적 불문하고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 협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더욱 활성화될 것입니다.
극지에서의 자원 활용과 환경보호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극지연구소의 기본적인 역할은 과학 연구와 환경보존입니다. 하지만 광물자원과 수산자원도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죠. 환경과 개발은 과학적 데이터가 선택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국제조약이 정책적 결정에 앞서 ‘현재 과학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증거Best and Available Science Evidence’에 근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판단이 정확하지 않다면 저는 언제나 보존에 가치를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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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극과 북극이 현재세대의 개발 대상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 남기는 유산이기를 바랍니다. 미래세대에게 극지 개발에 대한 선택권을 넘겨주고 싶습니다.”
인공지능, 위성, 원격 센서 같은 디지털 기술이 극지 연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나요?
극한 환경의 극지역에서 원격탐사와 인공지능은 매우 유용한 수단이며 이미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성은 광역의 변화를 보기에는 좋지만 현장 관측보다 정확도가 떨어지고, 인공지능은 결국 최초 설정값의 영향을 받겠지요. 양질의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한 현장 조사가 가장 적합한 상황입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과학적 신념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현장 조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물론 안전과 빠르고 다양한 활용을 위해 기술의 순기능을 잘 접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극지에 대한 부장님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극지는 미지의 공간입니다. 위험일지 기회일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 모든 나라가 미래를 위한 기회라고 믿고 달려가는 곳입니다. 저는 국제환경법을 전공했는데, 공부하다 보면 현재와 미래세대, 선진국과 개도국, 개발과 환경 등 대립되는 가치의 형평성에 관한 철학적 고민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속 가능한 개발’의 본래 뜻은 ‘환경의 지속가능성이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 경제개발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즉 자연환경의 보존과 보호가 그 핵심이자 개발을 제한하는 기준이었던 것이죠. 저는 남극과 북극이 현재세대의 개발 대상이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해 남기는 유산이기를 바랍니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지금부터 어떤 상상력과 꿈을 키우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종합적으로 보는 습관을 들이길 바랍니다. 과거에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와 기능인 양성·육성에 절대적인 힘을 쏟았지만, 기능 하나로만 보면 우리는 결코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앞으로는 전문성만으로 사회의 리더가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융합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이런 능력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분야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다양한 경험을 거쳐 과학 행정가의 길을 걷게 된 부장님의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정책 전문가와 과학기술 행정가로서도 더 성장하고 싶어요. 정책 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통과 융합이지만 개인 능력의 깊이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책 담당자의 지식이 얇고 넓게만 퍼져 있다면 과학자와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거든요. 과학자만큼의 깊이를 갖고 소통해야 해요. ‘내가 하는 정책은 깊이가 있었는가’에 대한 고민을 늘 하고 있어요. 동시에 연구자로서의 본성도 남아 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연구자로서의 열망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메커니즘이 전혀 다른 두 분야인 만큼 항상 고민하고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소통할 수 있는 행정가, 깊이 있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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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상 극지연구소 기획조정부 부장
서원상 부장은 누구
국제환경법을 전공한 후 극지연구소에서 12년간 정책기획, 연구사업 관리, 전략기획을 거쳐 현재 기획조정부를 이끌고 있는 과학 행정가다. 극지활동진흥법 입법 추진, 남극연구활동진흥기본계획 수립,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 및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 정부 대표 등의 역할과 업무를 수행했으며,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사업단 단장을 맡아 예비타당성조사 기획을 담당했다. 현재 기획조정부에서 극지연구소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며 극지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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