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열기
Focus Story>Fall in Tech
로봇 시대,
법과 윤리가 답해야 할 질문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기술경영전문대학원 초빙교수

더 이상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과 유사한 외형과 사고능력을 갖춘 휴머노이드는 점차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이들은 인간과 직접 상호작용하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존재로 다가온다. 로봇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앞두고, 우리가 마주한 법적·윤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이제 인공지능은 화면 속에서만 작동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최근 인간과 유사한 외형, 움직임과 사고능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이 다수 제시되고 있다. 테슬라는 ‘옵티머스Optimus’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 개선해나가고 있다.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이미 2015년에 감정 인식 기능을 탑재한 ‘페퍼Pepper’ 로봇을 보급하고자 시도한 바 있다. 국내 기업들 역시 제조업이나 물류 현장에서 축적한 로봇 기술을 기반으로 돌봄·교육 등 다양한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는 차원을 넘어선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산업용 로봇과는 질적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간과 직접 상호작용을 하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역할을 맡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인이나 아이를 돕는 돌봄 휴머노이드가 등장할 경우 가족의 일원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 이는 법적 규율, 윤리적 판단, 사회적 수용성에 걸쳐 다층적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현재 우리의 법 제도가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을까? 법적·제도적 준비는 이제 시작 단계다. 로봇의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수집하는 데이터에 대한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휴머노이드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규율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그리고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누가 손해를 부담할 것인가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된다. 이 글은 우리가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에서 선도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어떠한 법적·제도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지, 나아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s1_5_1.jpg
로봇 산업 강국, 지속적 발전과 확산을 위한 지원책은?
s1_5_2.jpg
LG이노텍의 자율이동 로봇AMR이 제품을 옮기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산업용 로봇 밀도가 높은 국가 중 하나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산업용 로봇 강국이다. 국제로봇연맹IFR의 <2024 세계 로봇공학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용 로봇 밀도는 노동자 1만 명당 1000대를 넘는다. 전 세계 평균 162대에 비추어 압도적인 수치다. 정부는 로봇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2008년에 이미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이하 지능형로봇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로봇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춘 진흥법의 성격을 가진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주기적으로 지능형 로봇의 발전과 보급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실태조사를 수행해야 한다. 또한 로봇 기술 실증을 위한 테스트베드 및 체험 환경을 위해 로봇랜드를 조성하는 사업도 진행할 수 있다. 나아가 지능형 로봇 전문 기업을 지정하여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편 2023년 개정된 지능형로봇법은 자율주행 로봇의 운행에 관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무엇보다 개정법은 배송 등을 위해 자율주행으로 운행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을 ‘실외이동 로봇’으로 정의한 다음 보도에서의 운행을 허용했다. 이는 로봇 업계가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사항이 반영된 것이다. 다만 보도 운행을 위해서는 안전성을 검증받아 운행 안전 인증을 취득해야 하고, 보도 등에서의 운행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인적·물적 손해배상을 위해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이처럼 지능형로봇법은 로봇의 발전과 확산을 위한 여러 지원책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진흥 중심의 법률은 휴머노이드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며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들을 모두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특히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영역은 바로 사생활 보호 및 안전성 확보다.
사생활 보호 내재화를 위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휴머노이드 로봇이 우리 생활에 들어오면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사생활 침해 위험성이다. 로봇은 카메라, 마이크, 센서를 통해 사람의 얼굴, 음성, 행동 패턴을 끊임없이 수집하고 분석한다. 이는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 처리로 이어지며, ‘항상 켜져 있는 감시장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 법 제도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2023년 개정을 통해 드론이나 로봇 등 ‘이동형 영상정보 처리기기’에 대한 규정을 신설했다. 이와 함께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여, 로봇 등을 통한 개인정보 수집·활용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로봇을 통해 수집되는 영상정보에 적용되는 주요 규율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촬영 사실을 표시해야 한다. 로봇이 무엇을 기록하고 어떤 자료를 수집하는지 명확히 알려야 한다. 로봇의 카메라 작동 여부를 LED 점등이나 알림음으로 표시하는 것이 그 예다. 둘째, 운영관리 방침을 마련해야 한다. 영상정보의 수집 목적, 보관기간, 관리 책임자 등을 명시한 운영 방침을 수립해야 한다. 셋째, 안전성 확보 조치를 수행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암호화나 접근 제어 같은 기술적 보호조치를 통해 개인정보 유출이나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보 주체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촬영된 영상이나 녹음된 음성 데이터에 대해 조회, 정정,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내재화하는 것은 휴머노이드 확산의 중요한 전제가 된다. 2021년에 발생한 가정용 월패드 해킹 사건은 집 안의 영상이 불법적으로 유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생활 보호를 확실하게 보장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자기 집 안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뜻 들여놓지 못할 것이다.
s1_5_3.jpg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은 로봇의 정보 수집 규정을 구체화 해 사생활 침해 위험을 줄이는 데 중점을 둔다.
로봇이 일으킨 사고, 책임은 누가?
휴머노이드 로봇은 자율적인 판단 능력과 인간과의 물리적 상호작용을 특징으로 하기에,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26년 시행을 앞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하 인공지능기본법)’은 바로 이러한 인공지능 시스템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초의 입법이다.

인공지능기본법은 ‘고영향 인공지능’ 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하여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 및 기본권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에 대해 안전성 확보 의무를 부과한다. 구체적으로는 위험관리 방안과 이용자 보호 방안을 수립·운영해야 한다. 또한 고영향 인공지능에 대한 사람의 관리·감독이 가능해야 하며, 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인공지능의 작동에 관한 설명 방안도 수립·시행해야 한다. 이러한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한 조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를 작성하고 보관할 필요도 있다. 다만 산업 진흥을 고려해 인공지능기본법 위반에 대한 벌칙은 상대적으로 낮고, 법 시행 후 업계 적응을 위한 계도기간을 둘 예정이다.

현재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고영향 인공지능’으로 명시적으로 분류돼 있지는 않다. 다만 의료 분야에서 활용되는 경우 ‘디지털 의료기기’로서 고영향 인공지능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향후 돌봄·교육·공공안전 분야와 같이 인간의 삶에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용도로 활용될 경우, 고영향 인공지능의 범위에 새롭게 편입될 가능성도 있다. 간병 로봇이 환자를 잘못 돌보거나, 교육용 로봇이 학생들에게 예기치 않은 사고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안전성·신뢰성 확보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이러한 잠재적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우리는 인공지능기본법의 틀 안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안전성 검증 및 인증 절차를 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이는 산업 진흥과 더불어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져올 사회적 위험을 최소화하고, 신뢰를 기반으로 한 로봇 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필수적인 과제다.
복잡한 책임 소재, 보험제도 등 보완책이 중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일으킨 사고에 대해 누가, 어떻게 손해를 배상할 것인지 명확히 하는 것은 기술이 사회에 정착하기 위한 필수 전제다.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피해자에게 배상할 책임을 진다. 그러나 휴머노이드 로봇은 제조업자의 책임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로봇의 결함뿐만 아니라 이용자의 사용상 부주의가 결합돼 사고가 발생한다면, 책임 소재와 범위가 불분명해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보험제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비교하자면 자동차는 수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 사고를 일으킬 수 있지만, 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고 그에 따른 배상 제도가 확립돼 있어 많은 이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보험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사고 발생 시 피해자에게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을 보장하는 것은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결국 휴머노이드 로봇 사고에 대한 책임 문제는 혁신을 지나치게 제약하지 않으면서도, 이용자들이 충분히 안심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지능형로봇법이 실외이동 로봇의 사고에 대비해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것은 참고하기 좋은 사례다. 이는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수용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s1_5_4.jpg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9월 12일 ‘취임 50일 기자간담회’에서 AI 기본법 및 AI 관련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이날 배 장관은 내년 1월부터 시행 예정인 인공지능기본법의 과태료 조항을 기업 부담을 고려해 최소 1년 이상 유예한다고 밝혔다.
로봇과 함께하는 미래,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제 인간과 상호작용을 하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 2008년 지능형로봇법을 제정해 로봇 산업 진흥을 위한 기반을 다져왔다. 2023년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은 로봇에 의한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 내년에 시행될 인공지능기본법은 안전성과 신뢰성 확보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안전성 및 신뢰성 확보 방안을 좀 더 구체화하고, 안전성 검증 및 인증 절차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또한 자동차보험처럼 로봇 보험제도를 확립해 피해자를 보호하고 산업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노력이 선행될 때 비로소 우리는 휴머노이드 로봇과 공존하는 미래를 안전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s1_5_5.png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기술경영전문대학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졸업 후 프로그래머로 3년간 일했다.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38기에서 수석 수료했다.
변호사로서 다양한 실무 경험 후 2018년부터 KAIST 기술경영학부 및 기술경영전문대학원에서 4차 산업 관련 법률 연구에 힘쓰고 있다.
 이번 호 PDF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