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본의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대응’
일본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곧바로 당선인과의 조기 정상회담을 희망했다. 이는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당선인을 외국 정상 중 처음으로 만났고 이를 계기로 개인적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전 회담은 거절했지만, 취임 이후 미국에서 요청하는
형식으로 아시아 정상 중에서 처음으로 일본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했던 관세 폭탄을 피하는 것이었다. 회담 결과 외교·안보 분야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미·일 협력 등이 재확인되었고 경제 분야에서는 일본이 선제적으로 대미 투자 확대를 발표했다. 회담은 양 정상이 서로를 칭찬하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고
일본이 우려한 관세, 방위비 등 경제적 부담을 가져올 만한 발언은 제기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 정부와 언론 등은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지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한 대로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일본도 24%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시바 총리는 4월 4일 중의원 내각회의에 출석해 이를 ‘국난’이라고
표현했으며, “정부로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관세 협상을 하기 위해 미국 방문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일본의 움직임을 보면, 이시바 총리가 언급한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대응’이란 미국에 고강도의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난을 당한 일본의 기업과 국민의 피해를 줄일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전부터 이미 포착되었다. 지난 2월 2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와 함께 ‘미국 관세 조치
등에 따른 일본 기업 상담창구’를 JETRO에 개설했다. 또한 4월 2일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자 곧바로 4월 4일 JETRO에 ‘미국 관세 대책본부’를 설치한 후 일본 기업의 피해
등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고 상담 등을 통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4월 10일 일본 언론은 “정부·여당이 최근 물가 상승과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조치에 따른 경제 대책의 하나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금을 지급하기 위한 조정에 들어갔다”라고 보도했다. 당정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소득 제한 없이 모든 국민에게
1인당 5만 엔을 지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원금을 1인당 10만 엔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신속한 대응이 바로 이시바 총리가
언급한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대응’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첨단 과학기술 공동개발 적극 추진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 속에서 반도체산업의 부활과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미국과 첨단 과학기술 개발 협력을 추진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관민 공동 투자로 설립한 라피더스Rapidus가 회로 선폭 2nm 상당의 최첨단 시스템반도체 양산을 위해 IBM과 ‘2nm 설계 기술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IBM은 2023년 5월, 도쿄대학, 시카고대학과 함께 양자를 중심으로 한 슈퍼컴퓨터 개발에 향후 10년간 1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구글 또한 비슷한 시기에 이 두
대학과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투자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의 AI 인프라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산업기반을 강화하고, AI·양자컴퓨팅·최첨단 반도체와 같은 중요한 기술개발에 있어 세계를 선도하기 위한 협력에 합의했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첨단 과학기술 공동개발은 계속되겠지만, 관세 문제에 대응하는 일본 정부의 자세를 보면 일본이 주도권을 가져오거나 자립화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