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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 슬기로운 기술 생활
물리적 세계를 최적화하다,
디지털트윈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디지털 전환’이 글로벌 경제의 핵심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전환은 기업의 업무, 생산 기술, 제품 등을 디지털화한 후 이를 기반으로 가상 시험이 가능한 디지털 환경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혁신 중 주목받는 하나의 키워드가 ‘디지털트윈Digital Twin’입니다. 디지털트윈은 ‘디지털 전환의 열쇠’입니다.

현실 속 사물 구현해 미리 경험하고 예측
지난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전 인류가 속도를 늦추는 대신 디지털 세계로의 전환을 가속화했습니다. 특히 ‘디지털트윈’의 활용도가 확대되었습니다. 미국 미래학 싱크탱크인 다빈치연구소 소장이자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Tomas Frey는 그 흐름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습니다.

디지털트윈이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쌍둥이처럼 복제해 디지털화하는 것입니다. 현실 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을 컴퓨터 속 가상 세계에 똑같이 구현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이용해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 결과를 예측, 분석하는 시스템입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실 세계에 변화를 가했을 때 실물이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하며,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분석합니다.

메타버스가 가상의 세상을 실생활과 연결하는 것이라면, 디지털트윈은 세상의 일부를 가상공간에 그대로 구현합니다. 그렇다고 디지털트윈이 모든 사물에 적합한 방식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시뮬레이션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을 반드시 디지털트윈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잡한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공장, 대규모 건축 현장 등에 구성된 제품이나 프로젝트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세상의 일부를 가상공간에 그대로 구현하려는 것일까요. 이는 현존하는 사물의 상태가 과거에는 어떠했고, 현재 상태는 어떻고, 또 미래에 더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상 시험을 통해 알기 위해서입니다. 실제 환경에서 실험하기 어려운 문제를 가상에서 검증하고 해결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최선의 선택을 찾아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과 똑같은 신체를 가상으로 만든다고 해봅시다. 이때 실제 인물과 같은 조건(성별, 나이, 신장, 기저질환 여부 등)으로 가상 인물을 만든 다음 약물을 투여했을 때의 반응이나 치료 효과, 부작용 등을 시험한다면, 의사들이 나만을 위한 맞춤치료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시험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자주 가는 식당, 회사, 학교, 도서관, 버스와 동일한 모습들을 디지털 화면에서 볼 수 있다면 어떨 것 같나요? 게다가 사진처럼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면 말이죠. 당신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면, 집에 가는 길에 매장에 가스를 끄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직접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 위치를 직접 볼 수 있으니까요.
실제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동일하게 반영해야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세계 경제를 이끄는 주요국들은 경제 체질 강화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트윈을 구축하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어렵습니다.

디지털트윈을 만들려면 세 가지 복제가 필요합니다. 실제의 운용 데이터, 객체의 행위 모델, 실시간 디지털 공간 정보 및 사물 형상 정보 등입니다. 즉 건물, 식생과 같은 땅이 가진 모든 물리적 정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하고, 각 요소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갖춰야 합니다.

이를테면 디지털 공장에서는 일반적으로 3D 도면을 디지털 환경에 입력하는 방법을 통해 디지털트윈을 구현합니다. 이는 단순히 공장 내 기계들의 배치만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 내에 존재하는 이동 설비의 작동 반경부터 세부적인 모터 회전수까지 다양한 변수를 확인해 실제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동일하게 반영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현재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상업・산업 지구, 인구, 교통량, 오염, 국지기후 등을 모델화하기가 힘듭니다. 특히 디지털 세계에 변숫값을 동일하게 반영할수록 실제의 값과 동일한 예측값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정밀한 측정값까지 꼼꼼하게 반영해야 하는데, 공정이 복잡해질수록 필요한 데이터, 모델링, 예측값의 신뢰성 등에 대한 고려 사항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디지털트윈을 구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출처가 다른 여러 데이터를 사용하려면 수많은 노력과 연구를 해야 합니다.
2002년 제조업에 디지털트윈 개념 처음 적용
디지털트윈은 2002년 미국의 마이클 그리브스Michael Grieves 박사가 ‘제품 생애주기 관리PLM’의 이상적 모델을 설명하면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존 비커스 박사는 이 개념을 디지털트윈으로 명명했습니다. NASA는 2010년 우주탐사 기술개발 로드맵에 디지털트윈을 반영하면서 우주산업에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해왔습니다.

사실 NASA는 1960년대부터 디지털트윈 기술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NASA가 비행을 나서는 우주선을 완전히 똑같이 지상 버전으로 복제해 우주비행사를 지원할 때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미국의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이 자사의 엔진, 터빈 등의 제품에 디지털트윈 모델을 적용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엔진에 센서를 부착해 데이터를 수집한 뒤 만든 디지털 엔진으로 엔진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에너지 절감 솔루션을 확보했습니다. 이 때문에 제너럴일렉트릭이 디지털트윈의 원조로 혼동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디지털트윈은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국책 과제로 추진 중입니다. 기술 구현이 어려운 만큼 투자 비용 또한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디지털트윈의 시장 규모가 2026년까지 482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합니다. 이 중 미국의 비중이 가장 큽니다.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로 잡으면 유럽은 93%, 일본 87%, 한국이 82.3%에 머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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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국의 디지털트윈 추진 동향
미국의 디지털트윈 기술은 2016년 제너럴일렉트릭이 세계 최초로 산업용 클라우드 기반의 오픈 플랫폼인 ‘프레딕스’를 공개하면서 급격히 발전했습니다. 최근에는 170여 개의 기업, 정부기관, 학계 등이 참여하는 ‘디지털트윈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술의 상호운영성과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선두 주자입니다. 독일의 최대 전자·전기회사 지멘스가 디지털트윈 개념에 기반한 스마트팩토리 구축에 성공한 상태입니다. 공장의 모든 공정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오류 발생 가능성을 확인해 공정 작업의 최적화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구축했습니다.

우리 정부도 한국판 뉴딜2.0을 통해 디지털트윈을 10대 대표 사업으로 추진 중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트윈 실증 및 핵심 기술 개발에, 국토교통부는 디지털트윈 기반이 되는 공간 정보 구축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부산신항국제터미널의 스마트 항만 물류 플랫폼, 섬진강댐 유역의 물 관리 플랫폼,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의 산업단지 통합 관리 플랫폼, 지하공동구 스마트 관리 시스템, 경주 풍력발전소의 발전기 진단 및 출력 예측 플랫폼, 광주 송정역 일대의 도시 침수 스마트 대응 시스템 등의 실증 사업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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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트윈 기술을 통하면 수많은 양의 시제품을 제조하지 않고도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연구원이 VR 헤드셋을 쓰고 가상의 공간에서 자동차 설계 품질을 검증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토교통부는 디지털트윈 국토를 제작 중입니다. 대한민국 국토에 속한 모든 지형지물과 건축물의 모양과 성질을 그대로 본떠 가상공간에 만든 3차원 지도입니다. 디지털트윈 국토가 완성되면 침수지역 예측이나 경관 분석 등 다양한 도시·사회 문제를 지역에 따라 맞춤형으로 시뮬레이션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국가 주도의 디지털트윈은 2027년까지 구축해 공간 정보 국가 경쟁력을 세계 10위에 진입시키는 게 목표입니다. 그를 위해 정부와 기업, 학계가 힘을 합쳐 희망의 발걸음을 한 발씩 내딛고 있습니다.
제조, 의료 등 무궁무진한 활용 분야
디지털트윈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합니다. 활용의 대표적 예는 내비게이션입니다. 내비게이션은 공간 정보가 없다면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공간 정보만큼 데이터와 시뮬레이션 모델도 중요합니다.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로 편리함을 제공하는 반면 역기능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택시를 이용할 때 어떤 승객은 빠른 길을 이용하지 않고 내비게이션대로 간다고 불만이고, 어떤 승객은 내비게이션대로 가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그 이유는 최적 경로를 안내해주는 시뮬레이션 모델과 데이터의 정확도에 원인이 있어서입니다. 디지털트윈은 목적에 맞게 구축돼야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트윈에 의료 분야를 접목한 ‘메디컬트윈Medical Twin’ 솔루션도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메디컬트윈은 현실의 의료 시스템이나 신체 내부의 장기를 가상공간에 똑같이 만든 시스템입니다. 디지털 공간에서 미리 수술을 진행해 치료 효과를 예측해보거나 실제로 보기 힘든 장기 부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실시할 수술 중 예측하지 못한 사고에 대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습에서 접하지 못한 장기까지 정밀하게 살펴볼 수 있어 의료 교육에도 도움이 됩니다.

디지털트윈은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고, 효율성 향상과 더욱 높은 수준의 혁신을 이끌어낼 도구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의 응용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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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청소년 과학 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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