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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 모빌리티 시대
저장·운송 기술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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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세계 130여 개국이 인간 활동에 의한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탄소중립에 동참한 가운데, 사람과 물자의 이동 수단, ‘모빌리티mobility’ 부문의 탄소 저감 이슈가 여전히 뜨겁다. 도로 위를 다니는 승용차나 이륜차(바이크)만 놓고 보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BEV가 시장에 자리 잡고 있어 탄소중립을 향한 실마리가 보이는 듯하지만, 조금 시야를 넓혀보면 친환경 모빌리티 시대에 이르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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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트럭, 버스 등의 상용차나 특수차량, 장거리 운송이 필요한 선박, 항공기, 기차 등은 배터리를 탑재해 전기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탄소중립의 대책이 되지 못할 수 있다. 예컨대 항공기나 선박은 대용량 배터리 탑재 시 중량으로 인해 에너지 효율이 낮아져 장거리 이동이 어렵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값비싼 리튬계 배터리의 가격이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사람·물자의 이동을 현 수준으로 보장하면서도 탄소중립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술적 대안이 필요하다.

그 대안의 하나로 수소는 많은 기술적 잠재력을 갖고 있다. 수소는 같은 질량이 품고 있는 에너지 총량이 리튬계 배터리의 수십 배, 가솔린·디젤 화석연료의 수배에 이르는 청정 에너지원이자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원소다. 수소는 엔진 내에서 연소하더라도 오염물질 배출이 거의 없고, 특히 연료전지fuel cell라는 장치를 활용하면 산소와의 결합 과정에서 전기에너지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연료전지를 일종의 발전기라고 본다면, 수소는 그 자체가 사실상 전기에너지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수소 저장·운송을 위한 세 가지 기술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현재 수소 모빌리티가 우리의 일상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이유는 수소 생산·저장·운송·충전을 위한 기반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넓은 지역에 걸쳐 다양한 수소 모빌리티가 보급되기 위해서는 수소를 싸고 안전하게 저장·운송하는 방안을 개선해야 한다. 저장·운송과 관련해서 지금까지는 수소를 고압(20~70MPa)의 기체로 저장·운송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으나, 최근 다양한 방식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으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① 액화(액상) 수소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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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등 소형·저중량 모빌리티에 높은 밀도의 액화 수소를 충전·저장할 수 있다면 기존 운행 시간·이동 범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수소를 초저온에서 액화해 저장·운송 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기술이다. 액화 수소는 동일 부피에서의 에너지 밀도가 상온에서의 수소 기체보다 800배 이상 높고, 고압 기체보다 저장 용기의 안정성도 높아서 주목받고 있다. 이에 세계적으로 상용차 제조사, 에너지 기업 등이 관련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다임러, 하이존, 챠트 등 모빌리티 기업이나 린데, 넬, 에어프로덕츠 등의 에너지 기업이 대표적이다. 액화 수소와 관련해 주요 기술의 핵심은 저온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저장 중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증발 손실을 줄이는 것이다.

앞으로 극저온 액화 수소 기술과 관련된 소재·부품·장비 기술을 보다 개선한다면 수소가 필요한 장소까지의 운송 경제성을 높일 여지가 있고 수소를 적용해 기존 모빌리티의 효용utility도 높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드론과 같은 소형·저중량 모빌리티에 높은 밀도의 액화 수소를 충전·저장할 수 있다면 기존 운행 시간·이동 범위의 한계를 뛰어넘게 되므로 그 활용처가 보다 넓어질 것이다.
② 암모니아(NH3) 이용한 저장과 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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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타트업인 아모지는 암모니아 열분해 장치와 수소연료전지를 패키징해 드론,트랙터, 트럭 등에 적용 가능성을 입증했다.
인류가 널리 사용하는 화합물인 암모니아NH3를 이용해 수소를 저장·운송하는 기술이다. 암모니아는 세계적으로 농업·제조업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화합물로 그 자체는 친환경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암모니아는 약 650℃의 고온을 가할 경우 열분해cracking를 통해 해로운 부산물 없이 수소와 질소로 탈바꿈한다. 또한 LPG보다 높은 온도에서 액화하므로 극저온 상태가 아니더라도 손쉽게 에너지 저장 밀도를 높일 수 있다. 게다가 인류에게 이미 친숙한 화합물인 만큼 국가 간 수송을 위한 기반 시설 역시 상당히 확보된 상태다.

해당 기술은 수소를 저장·운송할 때에는 암모니아로, 수소가 필요한 곳에서는 열분해를 통해 수소를 얻는 것이 핵심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것은 암모니아 열분해 장치와 수소연료전지를 하나로 패키징packaging해 모빌리티에 적용하는 기술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스타트업인 아모지Amogy는 암모니아 열분해 장치와 수소연료전지를 패키징해 드론, 트랙터, 트럭 등에 적용 가능성을 입증했으며, 최근에는 선박용 수소연료전지 파워팩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선박 등 기존에 운영되던 운송 수단을 개조함으로써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 가능하므로 그 의미가 크다.
③ 액상유기수소운반체 LOHC 활용
화학적으로 수소 원자를 품는 유기화합물을 수소의 저장·운송 수단으로 활용하되, 목적지에서 화학적 과정을 통해 수소를 다시 추출해내는 개념이다. 암모니아 활용 시와 유사하게 LOHC도 대용량의 수소를 상압 혹은 저압에서 안전하게 저장·운송할 수 있고, 대개 기존 석유계 운송 인프라(유조선, 유조차량, 파이프라인 등)를 그대로 활용 가능하므로 경제적인 장점이 있다.

여러 가지 물질이 LOHC가 될 수 있으나 현재 유력한 대상 물질로는 톨루엔toluene 계열 화합물이 지목되고 있으며, 다국적 기업 유미코어, 독일의 하이드로지니어스Hydrogenious, 미국의 허니웰Honeywell이 LOHC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어 그 기술적 타당성이 상당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LOHC는 수소의 저장 및 추출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줄이는 것이 주요 기술 과제이며, 만약 이러한 과제를 극복한다면 암모니아보다 더 경제적인 수소 저장·수송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앞에서 설명한 3가지 기술 중 무엇이 미래의 수소 저장·운송을 지배할 것인지는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 각 대안은 운송 거리나 운송 조건에 따라 경제성이 달라질 수 있고, 국가별로도 여건이 다르므로 특정 기술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어쩌면 각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이후에도 동시에 여러 기술이 공존하며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이 공히 수소 산업의 경제성을 높이고 수소 모빌리티 시대의 개막을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시대를 대비해 그간 수소전기차 시장에서 선도적 입지를 확보한 우리나라가 수소 모빌리티 시대에도 리더십을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수소 저장·운송 기술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이어나가야 하며, 이때 미래의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할 수 있는 기술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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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허니웰Honeywell은 현재 LOHC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어 기술적 타당성이 상당함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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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한국자동차연구원 부원장
현재 한국자동차연구원 산업정책연구소 연구소장과 한국자동차공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자동차공학회 수소모빌리티연구회 회장, 국가핵심기술전문위원회 위원장, 산업기술보호위원회 위원, 국가전략기술 첨단모빌리티 분야 책임위원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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