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역사는 곧 생존을 위한 싸움의 역사였다. 보이지 않는 세균과 바이러스, 혹은 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상 반응과 끊임없이 맞서왔다. 그리고 인류는
무기를 개발해냈다.
바로 ‘약’이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진통제, 항생제, 백신, 수면제 등은 수많은 실패와 우연, 집념의 결과물이다.
어떤 약은
자연이 준 선물이고, 어떤 약은 인간이 만들어낸 정교한 작품이다.
백승만 지음 / 해나무 펴냄
우연한 발견을 의미하는 ‘세렌디피티’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빌헬름 뢴트겐은 음극선 실험 중 우연히 X선을 발견해 의료 영상기술의 혁신을 이끌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레이더를 개발하던 퍼시 스펜서는 실험 중 초콜릿이 녹는 걸 목격한 뒤 전자레인지를 개발했다. 그리고 인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을 빼놓을 수 없다.
약은 왜 그렇게 자주 우연히 발견됐을까?
1928년 영국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세균 배양 접시를 정리하다가 한 접시에서 푸른곰팡이가 주변 세균을 녹이고 있는 장면을 우연히 발견했다. 말하자면 “푸른곰팡이가
아래층에서 날아 올라와 위층 연구실의 우연히 열려 있던 창문으로 들어오고, 마침 실수로 뚜껑이 열려 있던 샬레에 살포시 내려앉아 따뜻한 8월의 런던 햇살 아래 무럭무럭
성장하며 다른 균을 죽인 것”이다. 그는 이 곰팡이에서 나온 물질이 박테리아를 죽인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 이야기가 바로 페니실린의 시작이었다. 그는 이 공로로 17년이
지난 1945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세렌디피티의 정수라 할 만하다. 타이레놀과 디기탈리스도 그랬다.
이런 사례가 너무 유명해서인지 우리는 종종 의약품 개발을 ‘우연한 발견’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과거에는 실제로도 그러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과거에는 의약품을 개발하는 방법이 효율적이지 않았다. 주기율표가 1869년에 등장했고, DNA는 1953년에야 그 구조가 밝혀졌으니 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자연의 힘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은 대부분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본격적으로 약을 ‘조각’하려고 ‘노력’하다
그러나 우연은 완전하지 않다. 기적이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는 건 인류의 본성과 들어맞지 않는다. 인간은 늘 아팠고, 약이 필요했으며, 그 절실한 욕망이 의약품을
‘개발’하는 동력이 됐다.
이 책은 신약 개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과학자가 새로운 약이 창조되어온 과정을 생생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저자는 신약을 개발하는 화학자들은 “분자를 조각하는 현대의
연금술사”라고 칭한다.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깎아 피에타상을 조각했던 것처럼, 분자 조각가들은 화합물에 탄소·수소·산소 같은 원자를 붙이거나 제거하고, 커다란 분자를
연결해 형태를 만든다. 다만 최종 목적은 다르다. 분자 조각가들의 목표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조각한 화합물이 나쁜 단백질에 찰싹 달라붙어 기능을 못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우리가 말하는 ‘약’이다.
책의 1장(운으로 찾아내다)에서는 앞서 언급한 우연한 발견의 일화들을 다루지만, 이후 장에서는 분자 조각가들의 고군분투에 주목한다.
예컨대 당뇨병 치료제 엑세나타이드의 역사는 동물 유래 물질이 약으로 개발된 과정을 보여준다(2장 자연을 모방하다). 과학자들은 미국 남서부 사막에 사는 아메리카독도마뱀이
혈당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이한 혈당조절 호르몬이 있었던 것이다. 분자 조각가들은 이를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했을 뿐 아니라, 이
물질이 소화관에 작용해 배가 부르다는 신호를 준다는 점을 이용해 오늘날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삭센다’로까지 확장했다.
책 후반부에서는 최근 유행하는 신약 개발 트렌드뿐 아니라 화학자, 생물학자, 동식물학자, 인공지능 개발자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성과를 소개한다. 또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 어떻게 최신 의약화학 기술이 사용됐는지, 그리고 그 기술이 미래의 신약 개발 과정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도 알아본다.
그저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은 없다
분자 조각가들의 고군분투를 읽으면서 알게 되는 교훈은 명확하다. 그저 앉은 자리에서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은 없다는 것. 페니실린은 우연히 얻어걸렸지만, 그 자체로 한계가
많은 물질이다. 주사제로만 투여해야 효과가 있고, 오래 쓰면 세균 내성으로 효과가 사라진다. 페니실린은 발견 이후 많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개선됐고, 더 많은 의사들에 의해
사용 지침이 마련됐으며, 더 많은 환자들에게 사용되면서 꾸준히 검증을 받았다. 요컨대 페니실린은 뼛속까지 파헤쳐진 약이다. 첫 등장은 우연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 약이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 후 이어진 끝없는 노력 덕분이다.
이제 분자 조각가들은 약이 될 수 있는 분자의 구조를 예측하고, 그 구조에 이를 수 있는 반응 경로를 계획한다. 단지 원하는 물질을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값싸고
안전한 약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경로를 고안한다. 이것이 바로 분자 조각가들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영역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손톱만 한 알약에서 다른 감정이 느껴질
것이다. 첩첩이 쌓인 경외감 말이다.
#신약개발#백승만#페니실린#타이레놀
크리스티네 기터 지음 / 유영미 옮김 / 초사흘달 펴냄
“가벼운 캡슐제는 고개를 숙이고 삼키세요!”
나는 알약을 먹을 때 으레 반동을 주듯 고개를 뒤로 젖히고 삼켜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한번은 식도에 약이 걸려 혼쭐이 났다. 물에 둥둥 뜨는 가벼운
캡슐제는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삼켜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탓이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티네 기터는 20년 넘게 약국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약에 대해 어떤 점을 궁금해하는지 깊이 이해하게 됐다. 그는 약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을
덜고, 좀 더 정확하고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1부에서는 ‘물 대신 우유로 약을 먹어도 될까’처럼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했을 질문들을 다루고, 2부는 약이 몸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설명한다. 3부에서는
신약 개발 과정을, 4부에서는 흔한 증상에 맞춘 가정상비약 구비법을 소개한다. 알아두면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로 구성돼 있어 한 번쯤 훑어보면 정말 좋을 책!
#현직약사#복약상식#가정상비약

사토 겐타로 지음 /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펴냄
청나라의 역사를 바꾼 ‘예수회의 가루’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는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즉위해 무려 61년간 제위에 있으면서 수많은 위대한 업적을 세웠다. 그런 강희제가 제대로 날개를 펴보기도
전에 종말을 맞이할 뻔한 위기가 있었다. 마흔 살에 떠난 원정길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위독한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때 그의 생명을 구한 건 예수회 선교사가
진상한 특효약, ‘예수회의 가루’라 불리는 약, 퀴닌이었다. 대항해 시대, 아메리카 대륙으로 포교를 떠난 예수회 선교사들이 퀴닌을 유럽과 아시아에 전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저자 사토 겐타로는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이 약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제안한다.
만약 퀴닌이 없었다면? 중국은 역사상 최고의 성군을 잃었을 것이며, 오늘날의 중국 또한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유럽 열강의 식민지 개척 속도도
크게 느려졌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라리아라는 풍토병이 아프리카 대륙을 보호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했으니 말이다. 그때 퀴닌이 개발된 건 인류에게 정말 좋은
일이었을까?
#퀴닌#말라리아#세계사



2024년 노벨화학상은 아미노산을 이용해 새로운 단백질을 설계하는 데 성공한 과학자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함께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 존 점퍼 수석연구원이 공동 수상했다. 세 사람은 AI를 활용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도구 ‘알파폴드2’를 개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베이커 교수의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활동했던 백민경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강연을 통해 이 혁신적인 연구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다.
#노벨화학상#알파폴드2#신약개발#단백질설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