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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공학자의 시선
나노 세계의 건축가 :
분자조립이 설계하는 소재의 미래
김상욱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김상욱 교수 연구팀은 나노소재를 분자 수준에서 조립해 신소재로 만들어내는 ‘분자조립 나노소재’ 분야를 확립하여 세계적인 석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2023년에 출시돼 1000만 개 넘게 판매된 ‘산화그래핀 항균 칫솔’부터 빛에 반응하여 원격조정할 수 있는 미래형 ‘인공 근육 섬유’까지,
독창적이고 원천성 높은 기초과학을 산업적 가치로 연결해온 그의 연구는 보이지 않는 나노입자의 설계가 어떻게 우리의 물리적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향상하는지 보여준다.

기존의 신소재 공정이 덩어리 소재를 깎아서 가공하거나 아니면 분자 간의 화학적인 합성을 통한 방법에 의존해왔다면, 본 연구팀은 블록공중합체·탄소 나노소재 등 다양한 나노소재들을 분자 수준에서 조립·제어해 신소재를 설계하는 ‘나노소재 자기조립 제어’ 분야를 확립했다.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 DSA 나노패터닝, 액정성 산화그래핀, 단일 원자 촉매 등 세 가지 세계 최초 성과를 통해 원천성과 창의성, ‘최초 연구’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입증하며 국내 학계의 연구 가치 기준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 ❶ 분자조립 제어 나노패터닝 : 분자들이 스스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성질을 이용해 아주 미세한 회로 패턴을 만드는 기술. 사람이 일일이 그리지 않아도 분자가 스스로 구조를 만들어 공정 효율이 높다.
  • ❷ 액정성 산화그래핀 : 액체의 성질(가공성)과 고체의 성질(정렬성)을 동시에 가진 소재. 그래핀을 물에 녹여 원하는 모양으로 뽑아내거나 넓게 펴 바를 수 있게 해주어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이다.
  • ❸ 단일 원자 촉매 : 금속 원자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조절해 반응 효율을 극대화한 촉매다.
분자조립 제어DSA, Directed Self-Assembly 나노패터닝의 의미
본 연구팀은 2003년 블록공중합체가 자발적으로 형성하는 초미세 나노 패턴을 대면적에서, 결함(디펙트)을 최소화하며, 원하는 형태로 유도하는 분자조립 원리를 세계 최초로 제시하고 학술적으로 정립했다. 또한 국내 반도체 회사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이 새로운 나노 패턴 원리를 실제 반도체 공정(ArF 리소그래피)과 결합하는 데 성공하여, 국내외 원천특허를 출원·등록했다. 이 성과들은 국제 반도체 기술 로드맵ITRS에 DSA라는 차세대 공정으로 등록돼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초미세 공정에 사용되는 EUV 리소그래피의 과다한 에너지 소비를 해소할 수 있는 해법으로 전 세계 유수의 반도체 회사들이 활발히 연구하고 있다.

이 방식은 특히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서 요구되는 막대한 에너지 소재에 대한 부담과 복잡한 공정 난도의 완화라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중요한 해법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원리를 다양한 기판에 적용할 수 있도록 확장하고, 레이저·플래시광을 이용한 초고속 나노패터닝 같은 실용 기술로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기초과학적 원리가 반도체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보 보안이나 IoT 센서, 에너지 장치 등 다양한 응용 분야로 확장될 수 있다.
  • ❹ 블록공중합체 : 성질이 다른 두 종류 이상의 단위체가 긴 사슬 형태로 연결된 고분자. 반응 속도가 빠른 성분이 먼저 사슬을 만들고 다른 성분이 나중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제조된다.
  • ❺ ArF 리소그래피 : 불화아르곤 레이저를 광원으로 사용해 반도체 웨이퍼에 미세 회로 패턴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노광 공정이다.
  • ❻ EUV 리소그래피 : ‘극자외선’이라는 매우 짧은 파장의 빛을 이용해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기술.
DSA 공정의 핵심 소재와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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➀ 화학 처리한 그래핀CMG, Chemically Modified Graphen
바닥 기판 위에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재료. 해당 공정에서는 일종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➁ 표면 중성화Surface Neutralize
기판의 성질을 중립적으로 만들어 특정 분자가 바닥에 달라붙지 않게 조절하는 공정.
➂ 블록공중합체BCP, Block Copolymer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두 종류 이상의 분자 덩어리(블록)가 하나로 묶여 있는 고분자로, 스스로 일정한 패턴을 만듦.
➃ 직류 전압DC Voltage
열과 함께 전기장을 가해주면 분자들이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설계도(CMG 패턴)를 따라 정렬한다.
산화그래핀 액정과 그래핀 상용화
그래핀은 ‘꿈의 소재’로 불렸지만 한동안 현실의 벽이 컸다. 원하는 형태로 가공이 어렵고, 대면적으로 균일한 품질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상용화의 걸림돌이 되어왔다. 그래핀을 실제 산업에서 쓸 수 있도록 발전시킨 대표적인 연구 성과 중 하나가 바로 본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액정성 산화그래핀Graphene Oxide Liquid Crystal’이다. 그래핀을 물에 녹일 수 있는 산화그래핀 형태로 만든 후 간편한 용액 공정을 통해 각 그래핀 층이 원하는 형태로 잘 배열되고 정렬되도록 함으로써 우수한 물성을 갖는 실용적인 신소재 개발이 가능하다. 바로 그래핀을 ‘제조 가능한 소재’로 바꾸는 전구체Precursor 기술을 제시한 것이다.

이 연구가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용액 공정이 갖는 제조상의 장점 때문이다. 용액 공정은 대면적, 대량생산, 코팅·섬유화 등으로 확장하기 쉬워 산업적인 스케일업에 유리하다. 또한 산화그래핀 액정은 이후 다양한 2차원 소재(TMD, MXene 등)의 공정에도 영향을 주며, ‘2차원 액정 소재’라는 새로운 신소재 패러다임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 ❼ TMD : 전이 금속과 칼코겐 원소가 결합한 2차원 나노소재. 층상 구조를 이루며 원자 한 층 수준의 두께에서도 반도체 특성을 띠어 초저전력 반도체, 고성능 센서 등 광범위한 분야에 응용된다.
  • ❽ MXene : 금속의 전도성과 용액 공정의 편의성을 동시에 갖춘 2차원 나노 물질로, 차세대 에너지 저장 장치의 핵심 소재다.
기초연구가 실용적인 제품이 될 때 : 산화그래핀 항균 칫솔과 그래핀 섬유로 이어진 상용화
본 연구팀은 산화그래핀 액정 원천특허를 바탕으로 2021년 교원 창업 기업 ㈜소재창조를 설립하고, 협력사들과의 공동개발을 통해 지속적인 항균성과 탄성을 갖춘 산화그래핀 적용 칫솔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홈쇼핑 채널을 통해 대량판매되며 시장에서 검증을 받았고, 누적 판매 1000만 개가 넘는 히트 상품으로 성장했다. 이는 고품질 그래핀 소재를 응용한 제품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크게 상업화에 성공한 사례 중 하나다. 상용화의 확장은 칫솔에서 멈추지 않았다. 최근에는 산화그래핀 복합 의류용 섬유 개발에 성공해 스포츠 의류 분야까지 응용을 넓히고 있다. 2024년 파리올림픽 태권도시범단 유니폼에 협찬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골프복 등 다양한 스포츠 의류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빛에 반응하는 헤라클레스 인공 근육 섬유
기초과학이 상용화로 이어지는 길에는 두 종류의 성과가 있다. 하나는 당장 시장에 들어가는 제품형 성과, 다른 하나는 미래 산업의 로드맵을 바꾸는 패러다임형 성과다. 그래핀 기반 인공 근육 섬유는 후자에 가깝다. 이 연구는 빛을 이용해 원격으로 제어되며, 수축·이완을 반복할 수 있고, 수축률·속도·힘·에너지 등 기능적 측면에서 생체 근육을 훨씬 넘어서는 기계적인 운동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그래핀 소재의 새로운 응용 분야를 개척한 성과로서 노약자나 장애자를 위한 운동 보조장치, 다양한 웨어러블 장치 및 미래 소프트 로보틱스 분야의 매우 중요한 성과로 전 세계적인 큰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로보틱스에 적용되고 있는 무겁고 에너지 소비 높은 ‘모터와 기계 부품’을 대체하는 새로운 미래 산업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핀에 이종 원소 도핑을 통한 단일 원자 촉매 세계 최초 개발
화석에너지 사용에서 비롯되는 근본적인 지속성의 난제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에너지·환경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며, 이 중심에는 화학반응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고성능 촉매 개발이 필수적이다. 특히 최근에는 금속 원자 한 개가 고성능 촉매 역할을 하는 단일 원자 촉매가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공동연구팀은 2011년 그래핀 평면에 철 원자 한 개와 질소 원자 4개가 Fe-N4 형태로 만들어진 구조가 탄소나노튜브 표면에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현상을 발견했으며, 이는 단일 원자 촉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원자 한 개 수준의 촉매 구조를 통해 나노입자나 벌크상 촉매보다 훨씬 높은 촉매 효율을 얻을 수 있고, 특히 연료전지에 쓰이는 백금같이 값비싼 촉매 물질의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기초과학에서 상용화까지
필자는 DSA라는 새로운 반도체 나노 패턴 원리를 제시하여 국제 기술 로드맵에 등록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산화그래핀 액정을 개발해 국내에서 보기 드문 원천 소재 특허를 획득하고, 교원 창업 활동을 통해 최근 화제가 된 산화그래핀 칫솔 개발 등 실용화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단일 원자 촉매나 헤라클레스 인공 근육, 무작위적 나노 패턴 보안 소자 등 미래 가치가 큰 원천 소재 기술들을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원자와 분자들의 정렬과 조립이 어느 날 우리 손에 쥐어진 제품이 되고, 사회를 움직이는 신기술로 성장하고 있다. 최초 과학기술을 통한 신산업 개척을 이룬 본 연구팀은 나노 세계의 건축가로서 신산업 설계의 시작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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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판매량 1000만 개를 돌파하며 히트 상품으로 자리 잡은 ‘산화그래핀 항균 칫솔’.
독창적인 기초과학 연구 성과가 실제 산업적 가치로 연결되어 대중의 일상에 스며든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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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욱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 나노소재를 분자 수준에서 제어하는 ‘분자조립 나노소재’ 분야를 확립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DSA 나노패터닝, 액정성 산화그래핀 등의 연구 성과를 통해 원천기술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입증해왔다.
보이지 않는 입자를 설계하는 ‘나노 세계의 건축가’로서 미래 소재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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