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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Film&Tech
전쟁과 제4차 산업혁명 기술들
이경원 과학 칼럼니스트

어느 시대에나 발전하는 군사기술은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적을 굴복시킬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 환상은 어느 시대에나 실전에서 깨지고 말았다.
군대에도 보급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첨단기술, 그 기술이 빚어낸 파괴와 비극의 현장을 은막을 통해서나마 체험해보자!

기술이 주는 장벽 : 기동전사 건담 0080 주머니 속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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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건담 0080 주머니 속의 전쟁> 포스터.
전 세계 모든 국가를 통일해 하나의 나라 지구연방을 만든 미래의 인류. 넘쳐나는 인구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주 이민을 실시하지만 우주로 나간 사람들 중 일부가 지온공국이라는 정치 단체를 조직, 지구연방에서 독립하겠다며 전쟁을 벌인다. 이 지구연방과 지온공국 간의 전쟁 이야기가 바로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주된 소재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양측이 사용하는 전투용 로봇들을 기동전사라고 부른다.

지구연방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동전사 건담을 제작한 것은 물론, 더욱 발전된 후속 모델인 기동전사 건담 NT-1(이하 NT-1)도 개발해낸다. 이 NT-1이 중립 우주 식민지인 ‘리아’에 반입되었다는 정보를 접한 지온공국은 NT-1 파괴를 위해 리아에 특수부대 사이클롭스대를 민간인으로 위장 및 침투시킨다. 사이클롭스대의 대원 버나드 와이즈먼 하사(츠지타니 코지 분)는 현지에서 NT-1을 수색하던 중 현지인 여성 크리스티나 매켄지(하야시바라 메구미 분)와 서로 호감을 쌓게 된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매켄지의 정체는 지구연방군 중위이자 NT-1의 테스트 파일럿이었다. 와이즈먼을 포함한 사이클롭스대는 결국 NT-1의 위치를 알아내고, NT-1 파괴 작전을 실시한다. 그러나 매켄지가 조종하는 NT-1은 사이클롭스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이 과정에서 와이즈먼을 제외한 사이클롭스대 전원이 전사한다. 지온공국군은 정해진 시간 내로 NT-1을 파괴하지 못할 경우 리아에 핵 공격을 가하고자 하고, 이에 와이즈먼은 핵 공격을 막기 위해 홀로 기동전사를 몰고 NT-1에 맞선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두 남녀. 기동전사라는 기술의 갑옷을 입은 둘은 서로를 알아보지만 화평을 추구할 수 없었다.

첨단 군사기술은 전쟁의 안개를 벗기기도 하지만 오히려 덧씌우기도 한다. 표적의 실체를 가려 더욱 과감하게 공격에 나서게도 한다. 그런 점을 정말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드론 전쟁의 현실 : 아이 인 더 스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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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인 더 스카이> 포스터.
이번에는 반대로 전쟁의 안개가 너무 잘 벗겨져서 생기는 문제를 다루고, 로봇을 이용한 군사작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케냐에 모인 실존 테러 단체 알 샤바브의 조직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영국과 미국, 케냐 3개국이 연합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 작전에서 미군의 드론을 사용해 알 샤바브 조직원들과 그 안전 가옥을 손바닥처럼 훤히 보는 작전 지도부. 하지만 드론이 가져다주는 정보는 작전 지도부를 더욱 급박하게 몰아간다. 알 샤바브 안전 가옥에는 그들이 쫓던 주요 조직원들이 모두 모여 있다. 공격하면 일망타진이 가능하다. 그러나 안전 가옥은 경비가 삼엄해 지상군을 투입해 조직원 체포를 시도했다가는 엄청난 인명 피해가 일어날 게 뻔했다. 게다가 안전 가옥에서 조직원들이 자살폭탄테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방치했다가는 자살폭탄테러로 몇 명이 죽을지 모른다.

지휘부는 결국 드론에 탑재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해 안전 가옥과 그 속의 알 샤바브 조직원들을 모두 사살하기로 한다. 그러나 발사 직전에 안전 가옥 바로 앞에서 빵을 파는 노점상 소녀가 드론의 카메라에 들어온다. 소녀가 폭발에 휘말려 죽을 확률은 45%에 달한다. 그렇다고 헬파이어 미사일의 발사를 미루면 자살폭탄테러로 최소 수십 명이 죽을 것이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지휘부는 논쟁의 늪 속으로 빠져든다.

어떤 선택을 해도 누군가는 반드시 죽는 트롤리 딜레마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결정권자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한다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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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포스터.
그럼 인간 대신 기계가 선택을 하면 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인공지능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말이다. 인공지능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1960년대에 당대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그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주고 있다.

핵무장을 한 B-52 폭격기 편대가 늘 공중 초계 중이던 살벌했던 그 시절, 음모론에 심취한 미 공군 비행단장 잭 리퍼 준장(스털링 헤이든 분)은 독단으로 소련에 맞서 선제 핵 공격을 벌인다. 자신이 보유한 B-52 폭격기들에 핵폭탄을 탑재해 소련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이 사실을 안 미국 대통령은 갖은 수단을 다 써서 거의 모든 폭격기를 도로 불러들이지만, 소련의 대공 미사일 공격으로 손상을 입은 B-52 폭격기 1대가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초저공 비행을 통해 소련에 핵폭탄을 투하하고 만다.

문제는 소련에 ‘둠스데이 머신’이라는 자동 핵 보복 공격 시스템이 있었다는 점이다. 소련은 자국이 핵 공격을 당할 경우 이 시스템이 무조건 작동되도록 했고, 이 시스템은 인간의 개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설계되었다. 결국 지구는 ‘둠스데이 머신’의 작동으로 인해 멸망하고 만다.

‘둠스데이 머신’은 당시는 물론 지금도 실존하는 상호확증파괴MAD 구조의 완벽한 패러디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음미할수록 더욱 커지고 서늘해지는 공포를 준다. 그리고 군대의 의사결정 구조에는 반드시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도 준다. 모든 무력투쟁은 내 목숨을 걸고 상대의 목숨을 취하는 도박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걸어야 할 목숨도 없고, 내 목숨이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심도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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