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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History
양차 세계대전까지 부른
국제 광물 확보 경쟁의 역사
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인간의 문명적인 삶. 광물자원은 그 삶에 필요한 도구와 에너지를 이루는 필수 불가결한 소재다.
오죽하면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 시대 이름도 알고 보면 죄다 광물 이름이었겠는가.
그렇게 중요한 광물자원이기에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광물자원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동물이다. 그 도구를 만들려면 당연히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는 동물성이나 식물성도 있지만, 역시 광물질 재료가 성능과 내구성 면에서 압도적이다.

그런데 다른 자원도 그렇지만, 광물자원의 매장량은 지역적 편재가 특히 심하다. 그 때문에 인간 집단은 광물자원이 많이 나는 산지나, 그것의 공급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광물자원을 확보해야 더 많은 도구를 만들어 쓸 수 있고, 그로써 더욱 우월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물자원은 다름 아닌 권력이었던 셈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광물 획득 경쟁 역시 경제력과 군사력에 직결된 광물자원의 획득에 집중되어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은·동 등 화폐 재료, 그리고 철·구리·주석 등 무기와 생산도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가 주된 대상이었다.
미케네 문명의 청동검 유물. 청동기 문명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주석 공급망 사례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례로 청동의 사례가 있다. 청동을 만들려면 구리와 주석이 9대1 비율로 필요하다. 주석은 전 유럽에서도 극히 일부 지역(영국 콘월,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 중부 유럽 에르츠게비르게에, 프랑스 브르타뉴 등)에서만 나는 희귀한 광물이다. 그런데 미케네 문명(그리스), 미노아 문명(크레타), 이집트, 히타이트 등 청동기 문명 중심지들은 여기서 한참 떨어진 동지중해와 근동에 몰려 있었다. 결국 유럽의 주석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청동기 문명 중심지까지 운반하는 인류 최초의 장거리 공급망이 형성되었다. 공급망으로는 유럽에서 캐낸 주석을 대서양과 지중해를 거쳐 운반하는 해상 공급망과, 유럽 내륙의 육상 및 하천을 이용해 운반하는 육상 공급망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해상 공급망은 지중해 상인들이, 육상 공급망은 유럽 내륙의 여러 부족이 관리했고, 공급망 관리자들은 통행료 등을 받으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기원전 13세기 말부터 유럽에 들이닥친 이상기후로 인해 흉작이 계속되었고, 생활고에 내몰린 평민들이 해적과 산적이 되어 해상 및 육상 공급망을 공격해 마비시키자 자원 공급이 중단된 지중해 청동기 문명이 쇠퇴했다. 대신 어디서나 주석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인 철을 이용한 철기 문명의 시대가 열렸다.
이 사례에서 드러난 여러 요소, 즉 자원의 지역적 편재, 그에 따른 국제 공급망 형성과 공급망 관리자들의 세력 확대, 외부효과로 인한 공급망 붕괴와 그에 따른 사회의 격변 등은 21세기 현재까지도 계속 비슷하게 이어지고 있다.
광물자원 소비량 크게 늘린 산업혁명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광물 확보 경쟁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첫 번째로 산업혁명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으로 인류는 이전보다 더 많은 광물을 필요로 했다. 두 번째로 산업혁명으로 인류가 기계력을 사용하게 되면서 이 기계들을 움직이는 에너지를 낼 광물자원, 즉 화석연료와 구리(전기제품의 전선을 만드는 데 필요) 역시 대량으로 필요해졌다는 점이다. 이 중 화석연료는 한 번 쓰면 재사용이나 재활용이 불가하므로 광물자원 소비량 증가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따라 산업혁명 이후의 광물자원 확보 경쟁에서 주로 철광석(기계의 원재료), 석탄(증기기관의 에너지원), 구리가 그 대상으로 떠올랐다. 당시 세계를 무대로 영토와 세력을 뻗쳐나가고 있던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이 자원들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었다.

유럽 안마당이라고 이런 경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소설 <마지막 수업>으로도 유명해진 독일·프랑스 국경지대 알자스로렌 지방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철광석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었다. 앞의 소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당시 북독일 연방의 제후국)이 이 지역을 전리품으로 빼앗는다. 같은 해 독일 내 여러 군소 국가들이 프로이센 주도로 ‘독일제국’으로 통일되었다. 독일제국은 알자스로렌에서 획득한 철광석과 본토의 석탄으로 급속히 산업을 키워, 당시 유럽 최강국이던 영국에 버금가는 경제력과 군비를 순식간에 갖췄다.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알자스로렌 지방이 프로이센에 합병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그 또한 해당 지역에서 나는 철광석 때문이었다.
광물자원 확보 경쟁, 인류사 최대의 비극 불러
열강들 간의 광물자원 확보 경쟁은 결국 인류사 최대의 비극인 양차 세계대전의 주원인이 되고 말았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은 전 세계 식민지에서 구리·주석·고무·석유 등 다양한 광물자원을 헐값에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었다. 반면 식민지가 없던 독일은 철과 석탄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원을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던 영국이 독일을 해상봉쇄할 경우 독일의 산업은 마비될 수 있었다. 이에 독일은 영국과의 건함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영국 해군의 방해가 없는 육로를 통해 독일에서 중동과 인도양으로 곧장 진출할 수 있는 보급로를 얻고자 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드 철도 부설권도 확보했다. 이 철도가 지나가는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반도에도 구리·크롬·안티모니 등 독일 산업에 꼭 필요한 전략 광물이 많았다. 이는 해당 지역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영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샀다. 독일은 철광석 산지인 모로코의 주도권을 놓고 프랑스와도 충돌했다. 이는 영국·러시아·프랑스가 대독일 포위망(삼국협상)을 결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긴장된 상태에서 터진 사라예보의 총성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방아쇠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증기기관보다 더욱 효율이 뛰어난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군용 자동차(전차 포함)와 항공기, 잠수함이 처음으로 대량 투입된 전쟁이었다. 내연기관의 연료는 석탄이 아닌 석유였다. 세계는 이제 경제력과 군사력을 늘리려면 석탄보다 석유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다음 세계대전의 주원인이 되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목적은 유럽과 소련을 모두 정복하고 게르만 민족의 생활권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독일이 탐낸 곳은 소련 남부였다. 이곳의 바쿠 유전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석유 생산량을 자랑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1941년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이 강력한 소련군의 저항에 밀리자, 이듬해 전력을 소련 남부로 집중해 바쿠로 가는 길목의 전략 요충지인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과 결전을 벌인 사실이 그 점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패배한 독일군은 이후 소련을 상대로 승기를 잡지 못하고 밀리다가 결국 수도 베를린까지 소련군에게 유린당하며 전쟁에서 패하고 만다.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결전 중 하나인 스탈린그라드 전투 역시 석유자원을 둘러싼 독일과 소련 간의 경쟁 끝에 벌어졌다.
현대에도 계속되는 광물자원 확보 경쟁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는 붕괴되었지만, 세계는 공산주의권과 자본주의권 간의 냉전시대로 빠져들었다. 양 진영은 자신들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고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해 핵을 포함한 군비 경쟁은 물론 우주개발 경쟁까지 벌였다. 물론 여기에도 새로운 광물자원이 필요했다. 우라늄·티타늄·코발트·텅스텐 같은 전략 광물이 그것이었다. 특히 우라늄은 핵 군비 건설과 원자력발전의 연료다. 이를 얻기 위해 미국은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당시 자이르)의 싱콜로붸 광산 등에서 우라늄을 독점 공급받으려 했고, 소련 역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우라늄 매장지를 샅샅이 뒤져 국유화했다.

또한 제국주의 시대가 붕괴하면서 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에 수많은 신생 독립국이 생겼다. 그전까지 유럽 열강에게 자원을 수탈당했던 이 나라들은 주권을 얻자마자 자국 자원에도 주권을 주장했다. 자원 민족주의의 시작이었다. 이들은 자국 내에 들어와 있던 서구 다국적 기업들의 채굴권을 박탈하거나 광산을 강제로 국유화했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가 미국 소유이던 자국 내 구리광산을 국유화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을 구실로 아랍 주도의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이스라엘 지원국들에 실시한 석유 금수조치, 즉 ‘오일쇼크’는 자원 보유국이 자원을 무기로 강대국을 위협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에 자극받은 철광석·보크사이트 생산국들도 동맹을 결성하며 서구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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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인 미 해군의 ‘노틸러스’함. 냉전의 주요 상징인
핵 개발 경쟁에 필요한 우라늄 확보를 놓고 미·소 양국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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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중동전쟁을 겪은 아랍 연합국은 이스라엘 지원 국가들에
석유 금수조치를 가해 광물자원의 무기화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에 대량의 광물자원을 소비하던 선진국들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광물자원에 대한 국가 전략물자 비축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또한 호주나 캐나다 같은 친서방 국가로 공급처를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은 종식되었지만, 광물자원의 본격적인 호황은 이제 시작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국을 필두로 한 신흥 경제국들이 급속한 현대화를 통해 부상하면서 광물자원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큰 수요를 감당하고 그에 따른 높은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세계의 광업 기업들은 대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자본 통합 및 거대화를 이룬다. 또한 중국은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의 자원 부국을 대상으로 자원-인프라 연계 딜에 나섰다. 서구권 자본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은 인프라 건설의 반대급부로 이들 나라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치적 조건(인권 개선, 민주화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은 광물 채굴권만 주면 다른 조건은 필요 없이 인프라를 건설해주겠다고 제의한 것이다. 이러한 거래를 통해 중국은 거대한 광물자원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10년대 이후 현대에 들어와서는 각국 간 기술 개발 경쟁의 초점이 친환경 산업과 정보통신에 맞춰졌다. 이에 따라 해당 산업에 많이 필요한 리튬·코발트·니켈·희토류 등 광물의 위상은 국가 안보 자산으로까지 격상되었다.

이들 광물을 둘러싼 국제적인 경쟁 양상은 공급망 독점과 정제 기술의 패권화, 중국에 대항한 서방 진영의 독자적 공급망 구축과 블록화, 자원 민족주의 고도화 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고 유지해나가는 한 광물자원을 놓고 벌이는 경쟁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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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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