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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Film&Tech
영화 속 캐즘
이경원 과학 칼럼니스트

첨단기술의 캐즘 현상은 의외로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제품의 성공은 기술력만으로 좌우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늘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나아가려다 캐즘이라는 벽을 만난 실제 기술의 이야기, 은막에서 다뤄지는 모습을 알아보자.

<잡스>
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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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포스터.
2011년 타계한 스티브 잡스. 그의 삶을 다룬 영화만도 여러 편이다. 그중 2013년에 나온 영화 <잡스Jobs>(조슈아 마이클 스턴 감독)는 스티브 잡스(애쉬튼 커쳐 분)가 마주했던 캐즘 현상을 다루는 동시에 기술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기술을 다루는 인간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걸작이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만든 컴퓨터 애플1은 기판만 덜렁 있는 상태였다. 인수하려던 컴퓨터 가게 사장도 난색을 보일 지경이었다. 이에 잡스는 “그러면 케이스랑 모니터, 키보드를 따로 팔아라. 쓸 사람들이 조립해서 쓰라고 하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후 그가 만든 작품들은 갈수록 사용자 친화적이 됐다. 애플2가 그랬고, 매킨토시가 그랬고, 아이팟과 아이폰이 그랬다.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직관적인 설계 덕분에 그는 타계한 지 10년 넘은 현재까지도 컴퓨터 개발 업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그런 개발 기조와는 별개로, 잡스는 냉혹하고 비인간적인 면모로도 유명했다. 동거녀 크리샌 브레넌(아나 오라일리 분)이 아이를 임신하자, 잡스는 그 아이가 자기 아이일 리 없다며 브레넌을 내쫓아버린다. 함께 차고에서 애플을 일으켜 세운 창업 공신들도 쓸모가 없어지자 회사에서 해고해버린다. 또 다른 창업 공신인 스티브 워즈니악(조시 개드 분)은 잡스에게 “넌 사람이 아니라 제품과 자신에게만 집착해”라며 스스로 사직서를 던진다. 실제로도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 영화를 보고, 잡스가 실제보다 미화됐다는 평을 남길 정도였다. 잡스뿐 아니라 조지 패튼, 토머스 에디슨 등도 큰 성과를 낸 반면 비인간적인 면모로 지탄받은 것을 보면, 훌륭한 지도자가 인간적이긴 어려운 것인가 싶은 의문도 든다.
<소셜 네트워크>
기술도 법과 도덕을 무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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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 포스터.
<잡스>와 마찬가지로 <소셜 네트워크>도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 분)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가 페이스북을 창업한 계기, 그 과정에서 생긴 잡음과 소송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저커버그는 애인 에리카 올브라이트(루니 마라 분)와 큰 말다툼 끝에 헤어지고 나서, 인터넷에서 에리카 올브라이트를 욕하는 것은 물론 여대생들의 외모를 품평하는 사이트 페이스매시를 만든다. 물론 여대생들의 사진과 정보는 해킹으로 얻었다.

이 사건으로 근신에 처한 저커버그. 하지만 이 일로 그는 윙클보스 형제(아미 해머 & 조시 펜스 분)의 눈에 든다. 윙클보스 형제는 하버드 대학생만 접속 가능한 폐쇄형 소셜 네트워크 ‘하버드 커넥션’을 만들자고 저커버그에게 제안한다. 저커버그는 ‘하버드 커넥션’의 실제 개발은 뒷전으로 미룬 채, 이 아이디어를 빼내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페이스북’을 만든다. 이에 윙클보스 형제는 저커버그에게 민사소송을 걸기에 이른다.

“같은 칼이라도 의사가 들었을 때와 강도가 들었을 때가 다르다”라고 했던가. 기술은 기술일 뿐, 스스로 어떤 윤리적 가치도 고민하지 않고 보증하지도 않는다. 기술이 지니는 윤리적 가치를 고민하는 것은 온전히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몫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경우, 그 기술은 사회로부터 철퇴를 맞고 본의 아닌 캐즘에 처할지도 모른다. 대중을 신경 쓰지 않은 기술이나, 대중의 윤리를 신경 쓰지 않은 기술이나 결말은 비슷하다.
<에비에이터>
완벽주의가 대중화 막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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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에이터> 포스터.
이 영화는 실존 항공 재벌 하워드 휴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후반부는 그의 회사 휴스항공에서 만든 ‘H-4 허큘리스’라는 항공기를 다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이후 1943년까지 미국과 영국, 소련을 잇는 대서양 보급로에는 독일 U보트(잠수함)가 진을 치고 상선들을 노리고 있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U보트로 공격할 수 없는 항공기, 그것도 초대형 수송기를 만들어 대서양 보급로에 투입하기로 했다. 완전무장 병력 750명 또는 M-4 셔먼 전차 2대를 싣고 대서양을 건널 수 있는 이 수송기 H-4 허큘리스는 그 크기 또한 당시로서는 사상 최대급이었다.

그러나 항공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도 있었던 이 항공기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전에 실전에 배치되지 못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개발자 휴스의 엄청난 완벽주의 때문이었다. 영화에서도 휴스가 조종간 디자인을 정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그는 항공기 개발에 투입된 국가 예산 2300만 달러를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상원 청문회에까지 나가는 신세가 된다. 그는 자신이 결코 돈을 빼돌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항공기를 늦게나마 완성하고, 1947년 11월 2일 비행까지 시켰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이미 끝난 후였고, 미국 정부는 이 항공기를 단 한 대도 사지 않았다. 시장이 닫히기 전에 출시할 것. 하나 마나 한 얘기지만 의외로 많은 장인이 놓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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