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급망 안정과 자원순환 동시 해결
배터리의 심장이 양극재라면 양극재의 심장은 ‘전구체’다. 국내 기업이 폐배터리에서 회수한 금속으로 고품질 전구체 합성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전기차 보급 이후
폐배터리 처리 문제는
전 세계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배터리 속 니켈·코발트·망간 같은 유가금속을 회수해 재활용한다면 공급망 안정과 자원순환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 수 있다.
포스코퓨처엠 기술연구소는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물성 제어형 전구체 원료화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 5년간 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
포스코퓨처엠 기술연구소 김정한 연구위원을 만나 기술의 내용과 가치를 들어보았다.

연구과제명
회수된 유가금속을 이용한 고성능 양극 소재용 물성 제어형 전구체 이차전지 원료화 기술 개발
제품명(적용 제품)
하이니켈계 고에너지밀도, 장수명용 양극 소재
개발기간
(정부과제 수행기간)
2020. 04. 01. ~ 2024. 12. 31.
총 정부출연금
45억5600만 원
개발 기관
포스코퓨처엠, ㈜에코앤드림, 포스코홀딩스㈜,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
참여 연구진
김정한, 최승언, 남경원, 정광은, 정도각, 박준영, 신영준

김정한 연구위원은 전구체의 중요성에 대해 “배터리의 용량·수명·안정성 같은 핵심 성능은 사실상 전구체 단계에서 다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전구체 합성에는 금속 용액·암모니아·수산화나트륨NaOH이 사용되는데, 비율과 공정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가져온다.
“최고의 성능을 가진 양극 소재를 위해서는 반드시 최고 성능의 전구체가 필요합니다. 이번 과제를 통해 원재료의 비율과 공정 조건을 정밀하게 조절해 전구체의 물성을 제어함으로써 양극 소재의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재활용 원료를 활용해 전구체를 제조한다면, 폐배터리 처리 문제와 원료 수입 의존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해, 재활용 원료를 적용한 물성 제어형 전구체 제조 기술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술 개발은 폐배터리에서 회수한 유가금속을 활용해 고순도 전구체를 합성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전구체의 제조 단가 중 니켈·코발트·망간 등 유가금속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인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물질이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리스크가 크다.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향후 폐배터리 발생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30년에는 연간 11만 개, 누적 42만 개의 폐배터리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안이 없으면 매립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환경문제도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연구팀은 재활용 원료 기반의 물성 제어형 전구체 제조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최근 배터리 산업에서는 니켈 비중을 90% 가까이 높인 하이니켈High-Nickel계 양극재가 각광받고 있는데, 이 경우 전구체의 물성 제어가 더욱 중요해진다.
일반적으로 니켈 함량이 높아질수록 양극재의 에너지밀도는 올라가지만, 구조 불안정성이 커져 수명이 짧아지고 성능 저하가 빨라지는 문제가 따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입자의 크기·구형도·비표면적 같은 물성을 정밀하게 제어해야만 안정성과 성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구체 입자의 ‘극침상형 구조’다. 현미경으로 보면 바늘 같은 결정들이 모여 있는 형태인데, 이는 전기저항을 낮춰 배터리 성능을 높여준다. 그러나 내부가 비어 강도가 떨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입자의 내부는 치밀하게, 외부는 상대적으로 성기게 설계하여 입자의 강도를 높였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응용액의 pH, 교반 속도, 암모니아 투입량을 정밀하게 조절하고, 반응 초기 조건을 최적화하는 공정을 개발했다.
“기존 반응기에 불순물이 많은 재활용 원료를 적용하면 입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해, 성장 중 응집이나 미분 형성, 1차 입자 형상 변화 등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번 과제를 통해 독자적으로 개발한 신규 공정을 적용하면, 초기 전구체 입자들이 응집하는 것을 막고 개별 성장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불순물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환경에서도 구형도와 배향성이 우수한 전구체를 합성할 수 있다는 점이 기존과 차별되는 점입니다.”
특히 지난 7월 통과된 미국 OBBBA❶에 따르면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에 금지 외국 기관PFE 규정이 신설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망 규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중국 등에서 생산된 자재의 비중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AMPC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글로벌 시장의 공급망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원재료 자급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기술은 이러한 공급망 자립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포스코퓨처엠은 현재 개발된 기술을 적용한 전구체 공장을 광양 지역에 증설해 연간 4만5000톤 생산 체제를 확보했다. 다만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된 지 4~5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회수되는 폐배터리 물량이 충분치 않다. 이에 따라 원료 공급망 구축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전기차 폐배터리의 본격적인 회수 기점을 2030년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비해 재생 액상형 원료의 비율을 서서히 높여 최종적으로 100% 재생 액상형 원료를 사용한 전구체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 ❶ 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 : 미국에서 시행된 대규모 감세 법안으로 기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수정한 법이다. 2026년부터 배터리 생산에 중국 등 금지 외국 기관PFE에서 생산된 자재의 비중이 40%를 초과하면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2030년엔 그 기준선이 15%까지 낮아진다.

‘물성 제어형 전구체 원료화 기술’은 단순한 재활용 기술이 아니다. 불순물이 많은 재생 원료를 활용하면서도 광석 기반 원료와 동등한 성능을 구현했다. 더 나아가 환경과 공급망 문제까지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전략적 기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기차 시대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떠받칠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이 과제는 회사 과제를 넘어 국가 자원 안보와 환경문제 해결이라는 의미가 있어, 연구원 모두 사명감을 갖고 참여했다. 지난 5년간 총 10명이 참여해 흔들림 없이 연구를 이어왔다.
전구체 연구는 배터리 셀이나 양극재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분야가 아니다. 그럼에도 연구원들이 기술의 국가적·산업적 가치를 정확히 인식하고 사명감을 갖고 끝까지 함께해 주었다. 이탈하지 않고 함께해 준 동료 연구원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연구를 이어간 덕분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자부심을 갖고 도전을 이어가길 바란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100% 재활용 원료로 전구체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전기차 보급이 본격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배터리 발생량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재생 원료만으로 공장을 돌릴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현재는 여전히 광석 원료가 주력으로 쓰이고 있지만, 폐배터리가 대량으로 배출되는 시기가 오면 반드시 재생 원료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